“지금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10일 오후 한―미전의 진정한 ‘승자(勝者)’는 전국에서 경기를 지켜본 시민 응원단이었다. 굵은 빗줄기 속에 전국 70여곳에 모인 100만명의 시민들은 열띤 응원전 못지 않은 질서와 깨끗한 현장정리로 한 차원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난 뒤 서울 광화문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박채연(17·고2)양 등 중·고생들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며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내 손으로 깨끗하게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기 시작 뒤부터 전국에 비가 내리기 시작됐지만 응원객들의 대열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상당수 응원객이 우산을 준비해 왔지만, 뒷사람들의 시야를 가릴까봐 대부분 그대로 비를 맞았고, 비를 피해 자리를 옮기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 일대에서는 경기가 끝나자 붉은 악마 회원과 시민들이 쓰레기 봉투에 현장의 오물을 담아 치웠다. 경찰과 119구급대에는 단 한건의 사건·사고나 구조 신고도 접수되지 않았다. 동계올림픽 ‘오노 판정 파문’과 관련해 우려됐던 반미(反美) 돌발 행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 주간지 ‘존타크 악투엘’ 디트리히 폴커 기자는 “월드컵 취재만 세번째인데, 한국이 질서와 매너가 가장 뛰어나다”며 “유럽인들에게 한국인들의 질서정연한 응원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질서에 못지 않게 응원 열기도 뜨거웠다. 이날 한국팀의 16강 진출을 지켜보기 위해 전국의 대형 전광판이 설치된 곳에는 오전 일찍부터 응원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에는 40여만명이 모여 지난 4일 대(對) 폴란드전 때의 2배를 넘었다. 거리는 꽃처럼 붉었다.
응원단은 한국이 첫 실점하고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도 응원을 멈추지 않았다. 후반 33분 안정환이 헤딩 동점골을 터뜨리면서 열기는 다시 달아올랐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잠실 야구장 3만1000명, 상암동 평화의 공원 7만명, 여의도 LG무대 5만명, 강남 코엑스 앞 2만여명…. 응원단은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한국선수들의 슛이 터질 때마다 환호와 탄식, 아쉬움의 몸부림으로 끝까지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격전의 현장 대구도 아침부터 시가지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오전 11시, 2만여명이 경기장 주변에서 ‘붉은 악마’들의 출정식을 지켜봤다. 국민적 성원은 대전 한밭야구장(5000여명), 부산월드컵경기장(3만5000명), 수원 만석공원(5000여명), 부천 운동장(5000여명), 과천 경마장(2000여명), 춘천 문화예술회관(1000여명), 전주 덕진공원(3000여명) 등에서도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