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 ’가 된 두살배기 민경이와 민정이,민지 자매(사진 왼쪽부터).아이들은 월드컵 응원전을 통해 진한 가족애와 함께 ‘우리 ’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배웠다.<a href=mailto:kiwiyi@chosun.com>/이기원기자 <

민지(10), 민정(9), 민경(2) 세자매는 월드컵 대회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 엄마 아빠와 똑같이 빨간 티셔츠를 입고, 평소엔 자동차로
가득찼던 서울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네거리를 차지하고 앉아 소리치고
웃고 춤출 수 있었다니!

사실 세 자매는 주말이 더 바쁜 아이들이다. 여행사에 다녀 그런가,
역마살 낀 아빠 신원철씨(40)가 집안에 가만 있지 않은 탓이다.
통신회사에 다니는 엄마 정봉길씨(36)는 그런 아빠와 천생연분이다. 연애
시절부터 아빠랑 전국 안가본 데가 없는 엄마는 신문을 봐도 여행, 레저,
이벤트 같은 단어에만 눈을 들이댄다.

그런데 요즘 월드컵 경기 때문에 이들 '놀자 가족'은 주초부터 바빴다.
어제 월드컵 한국ㆍ미국전을 거리 응원하러 민지, 민정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바쁘게 이들 가족은 광화문으로 나갔다. 엄마 아빠는 월차
휴가를 냈다. 걸음이 이제 겨우 익숙해진 막내까지 빨간 티셔츠에 두건을
두르고 온 가족이 '출정'한 것이다. 지난 4일 한국ㆍ폴란드 전에 이어
두번째다.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내 식구 아니면 남이라고 생각하던
아이들이 이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우리'라는 공동체감을 느꼈다는
게 제일 큰 소득이죠." (아빠) "친구들이 무척 부러워했거든요. 다른
애들 아빠는 직장에서 축구 보고 온다고 늦게 들어오고 엄마는 아예
관심도 없대요. 우리만 정말 신났죠. 막 자랑했어요."(민지) 크건 작건,
온 가족이 늘 함께 해온 이들은 서울서 월드컵 응원을 했다는 '역사적
체험'을 공유한 것을 남다른 행복으로 여긴다.

한국ㆍ미국전 응원은 두번째 출정이라 준비까지 완벽했다. 첫날은 옆
자리 언니들이 돗자리를 양보해줬기에 이번엔 돗자리부터 챙겼다.
"대~한민국" 선창에 "짝짝짝, 짝짝" 박수를 치는 것이나 붉은 수건을
회오리바람 일으키듯 돌리며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것이 몸에
착착 붙었다.

물론 두살바기까지 낀 가족 응원단이 거리로 나가는데 걱정도 있었다.
함께 사는 외할머니는 인파 속에 손주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 "맛난 간식 먹으며 TV 앞에서 응원하자"고 간청했지만, 아빠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월드컵, 평생 한번뿐일지 모른다"며 고집을
피웠다. 민지, 민정이도 아빠 편이었다. "엄마 아빠랑 같이 보고
싶어요. 그러지 말고 할머니도 같이 가요."

다행히 할머니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술취한 사람 하나 없이, 모두들
응원에 몰입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 저마다 가져온 비닐 봉투에 휴지를
담았다. 엄마는 맨손으로 아스팔트 바닥을 쓸었고, 아빠는 다른 사람들
앉았던 자리까지 깨끗이 정리했다. 아이들은 자부심에 가슴이 뿌듯했다.
월드컵을 가족들의 뜻깊은 축제로 만든 민지네 가족. "집 밖, 학교
밖에서 아이들이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게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은 부모 몫"이라고 믿는 신ㆍ정씨 부부는 "월드컵은 '우리'라는
공동체감, '함께 사는 사회'의 참모습을 세딸에게 보여준 최고의
'현장학습'"이라고 기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