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씨는 디자인은 순수미술이 아니라 산업과 예술의 중간으로 봐야 한다며 “팔리지 않는 옷은 만들지 않는다 ”고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네킹과 옷감 조각이며, 옷걸이·가위·핀 따위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살풍경한 장면이 펼쳐졌다. 패션 디자이너
박지원(朴知遠·37·박지원콜렉션 대표) 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탁자
위에 쌓인 물건들을 치워 약간의 공간을 만들었고, 인터뷰는 그렇게 화약
냄새라도 풍겨올 듯한 실전(實戰)적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이런 곳에서 디자인을 합니까.

"조용히 틀어박혀 작업하는 스타일이 못 되네요. 여기서 팀원들과 막
섞여, 서로 떠들썩하게 의견을 나누면서 옷의 형체를 잡아나가요. 내가
직접 가위를 들고 옷감을 자르고, 재봉틀에 달려들어 꿰매보기도 하고,
단추며 레이스를 달았다 뗐다 하는 식이죠. 말하자면
현장파(派)인가요."

-화려한 패션의 산실(産室) 치고는 좀 삭막하군요.

"디자인은 순수예술이 아니잖아요. 안 팔리는 옷은 만들지 않아요.
상업주의라고 비난해도 좋고, 패미닌(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옷을 주로
만든다는 뜻)의 딱지를 붙여도 좋아요. 그러나 옷이 안팔리면, 저기서
열심히 가위질 하는 저 사람들 월급은 누가 주나요."

그녀는 요즘 기분이 좋다. 작년 9월 자신의 'JIWON PARK' 브랜드로
세계 패션의 심장부 뉴욕 시장에 도전한 것이 실팍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지난 봄·여름 시즌 30만달러 어치를 수출했고, 올 가을·겨울
시즌용은 주문량이 두배로 늘었다. 한국 디자이너로선 전례없는 상업적
성공이었다.

-패션잡지 ‘보그’ 최근호에 ‘유망주’로 소개됐더군요.

"미국 패션계가 저를 주목하기 시작한 거죠. 제 옷은 지금 미국 전역의
최고급 백화점·부틱에서 샤넬이며 루이뷔통과 나란히 걸려 팔리고
있어요. 뉴욕 '바니스' 백화점에선 내 옷을 윈도우에 전시해 놓았다고
하더군요. 아직 수출 물량이 많지 않지만, 톱브랜드에 버금가게 대우받는
것 만으로도 흥분되네요."

-어떻게 뉴욕 패션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나요.

"샘플을 갖고 갔더니 그쪽 쇼룸(세일즈 대행회사)이 처음엔 보려고도
않더군요. 한국 디자인이 수준 높은 것은 안다, 하지만 마켓(시장)하고
안맞는다, 뭐 이런 식으로 냉담하기 짝이 없어요. 그러다 제 옷을 한번
보더니 평가가 달라지더군요. 팔릴 물건이다 싶었나 봐요."

-그전에도 해외에 노크한 디자이너들이 있었지만 상업적으로 다
실패했죠.

"선배들은 옷을 판다는 의식이 별로 없었어요. 그저 뉴욕에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어 호평받았다는, 명분 만의 진출이었어요. 평론가들이 암만
호평하면 뭐해요. 현지 소비자는 찾지 않는데. 말 그대로 '쇼'일
뿐이죠. 실속없는 일을 되풀이해 온 거예요."

-‘실용주의자 박지원’은 다르다?

"다른 디자이너는 아름다운 옷, 개성있는 옷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나는
디자인할 때 '전략'을 짜고 '계산'을 세워요. 이 옷의 고객은 어떤
층(層)이다, 어느 가격대에서 어느 백화점에 전시돼 팔릴 것인지를 먼저
충분히 스터디하지요. 그러면 무슨 디자인이 최적(最適)이라는 계산이
수학답안 처럼 좍 나오는 거예요."

-말하자면, 디자인도 ‘기획’인가요.

"아마 다른 디자이너들은 '그게 무슨 디자인이야'라고 반박하겠죠.
디자이너는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추구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착각해선
안될 게, 디자인은 순수미술이 아닙니다. 예술과 산업의 중간쯤 될까요.
국립 현대미술관에 전시할 것도 아니고, 옷은 철저하게 팔리고 봐야
합니다."

한 점의 감상도 파고들 곳이 없는 실전적 디자인 철학.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에게서 현장을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1세대 디자이너의
대표주자 김행자(62·행자원 대표) 씨를 어머니로 두었다.

"성공한 디자이너라고 하지만, 사실 어머니도 처음엔 먹고 살려고
'의상실'을 시작한 거예요. 새벽 시장에 나가 원단을 떼어다 공장을
오가면서 밤 11시는 돼야 돌아오곤 했어요. 저는 그런 어머니의 고생과
분투를 옆에서 줄곧 지켜보면서 자라났어요."

그녀는 "디자이너란 직업에 한 푼의 환상도 갖고있지 않다"고 했다.
패션 디자인도, 오더(주문)며 반품·매출 같은 비즈니스 용어와 미싱
소리가 지배하는 산업 현장이라는 게 그녀 생각이다.

-왜 뉴욕에 진출할 생각을 했나요.

"위기감 때문이었어요. 한국은 외국 유명 브랜드의 황금시장이 됐어요.
앞으론 더해지겠죠. 10년 뒤를 생각하니 암담한 거예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머리를 짜냈죠. 유일한 해결책은 내 자신이 세계적 브랜드가 되는
것 뿐이었어요. 그러려면 무대를 세계로 옮겨야 한다, 밖으로 나가자,
이런 결론을 내렸죠."

-공격이 최선의 방어가 된 셈이군요.

"그런데 미국 시장도 부딛치니까 의외로 통하더군요. 고객 반응이 참
좋았어요. 미국 에이전트 조사로는 한 번 구입한 고객의 90%가 다시
매장을 찾는대요. LA '커브' 백화점에선 여배우 제니퍼 로페즈가 저희
드레스를 두 벌 사갔다더군요. '지원 박'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를 말이예요."

-혹시, 덤핑 수출 아닌가요?

"천만의 말씀. 저희 제품의 수출 단가가 얼만지 아세요? 블라우스나
스커트 한 벌에 400달러쯤 해요. 수출단가가 이 정도면 백화점에선
가격표가 적어도 1000달러 짜리는 붙지요. 미국 시장에서 고급품
이미지를 확실하게 구축해 놓았어요. 그래도 루이뷔통에 비교하면 가격이
3분의 2쯤 될까요. 갈 길이 까마득한거죠."
그녀는 이탈리아만 보면 속이 상한다고 했다. 그 나라는 패션 브랜드로
전세계 돈을 긁어 모으지 않느냐, '프라다'(이탈리아 브랜드)의 가방
수출이 벤츠 자동차보다 많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가 뭐가 모자라길래
이탈리아의 발끝에도 못미쳐야 하냐며 열을 올렸다.

-당신은 애국자인가요.

"애국가 부르자는 얘기가 아니예요. 우리 직업 종사자에게는 수출 많이
하는 게 최고의 애국 아닌가요. 안에서 지지고 볶고 할 필요도 없어요.
밖으로 나가 옷 팔고, 세계에 통하는 일류 브랜드를 만드는게 최고예요.
옷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여합니까. 패션이 창출해내는
산업의 먹이사슬이란 엄청난 겁니다."

-한국에선 패션 디자이너를 산업의 주역으로 봐주지 않죠.

"그게 환상이고 착각이었어요. 디자이너들도 '순수예술'의 환상에서
깨야 하고, 우리 사회가 패션 디자인을 보는 눈도 바뀌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걱정은 패션을 뒷에서 떠받칠 기술인력 인프라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점이예요. 요즘 미싱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어요."

-패션의 ‘3D 기피’ 현상인가요.

"우리 어머니 시절엔 옷 만드는데 기술자 6명이 한팀으로 생산라인을
짰어요. 그런데 지금은 2인1조가 됐어요. 사람을 못 구해서죠.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원래 순수미술 지망생이었다. 이화여대에서 서양미술을
공부했으나 미국에 유학갔다가 패션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인생전환'. 그녀는 첫번째, 두번째 하고 번호까지 매겨가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술가의 고독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죠.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
성격이 예술과 맞지않는 거예요. 순수예술을 하기에 나는 너무
로지컬

●유럽계 3大 브랜드/최대 패션왕국 LVMH, 구찌-프라다와 3파전

명품 브랜드는 '일류(一流)의 환상'을 파는 고도의 지식 산업이다.
소비자로 하여금 신분상승의 대리 만족감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해낸다.
현재 세계 패션은 이탈리아 구찌(Gucci)와 프라다(Prada), 프랑스
LVMH(루이뷔통·모에헤네시) 등 유럽계 3대 브랜드의 지배 아래 있다.
이들 3대 그룹은 가죽 가방을 만드는 작은 상점에서 출발, 끝없는 인수·
합병을 반복하면서 수십 개의 초일류 브랜드를 거느린 거대 패션그룹으로
성장했다.
세계 최대의 '럭셔리(고급품) 왕국' LVMH그룹은 5개 사업부문(의류·
화장품·향수·보석·시계·술 등)에 펜디·지방시·쇼메·겔랑 등
60여개 브랜드를 갖고 있다. 100여개 나라에 진출, 1250여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120억유로(약1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80년전 고급 피혁 제품점으로 출발한 구찌는 한때 내분으로 LVMH에
인수될 뻔 했지만 지금은 '이브 생 로랑' 등을 거느린 세계적
패션 그룹이 됐다. 1913년 설립된 프라다는 3년전부터 질 샌더,
헬무트 랭 등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를 잇달아 인수, 맹렬한 확장노선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