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한창이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한뜻이 되어
노력하고 지원하면 이룩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주고 있다. 16강
이상에 대한 기대, 개막식에서 보여주었던 한국 전통문화의 세계화
가능성, 수년 전만 해도 암울해 보였던 한국의 관광이 주가를 올리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1980년대 초 본격적인 투자 이후 15년도 안 되어 세계
1위가 된 메모리 반도체산업의 성취와 궤를 같이한다. 30년 전 반도체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한 많은 영재들을 기억한다. 그들의 노력이
정부·기업가의 지원과 맞아떨어져 한 세대도 채 가기 전에 세계 1위를
성취한 것이다. 세계적인 학회나 기술표준 회의에 연사 혹은 회원으로
초대받아 기술 소개도 하고, 기술표준화에 대한 토론을 주도하고 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나라산업은 국가의 산업이라는 뜻도 되고
나노·테라 분야 산업이란 뜻도 포함하고 있다. 미래 첨단산업의 특징은
더 작게 많이, 그리고 빠른 물질·소자·시스템을 만드는 데 있다.

나노는 10억분의 1이라는 뜻이고 테라는 10억개의 1000배이다. 예를 들어
요즈음 개인컴퓨터에서 보조기억장치로 사용하는 하드디스크는 약
10억개의 정보를 저장한다. 손바닥보다 작은 면적에 말이다. 몇 년 안에
기술자들은 1000배의 저장능력을 선보이게 될 것이다. 테라급의
저장능력을 가지게 되면, 지구 인구의 모든 개인정보를 동전 크기에
저장할 수 있다. 그리고 1나노미터는 분자간 거리보다 가까운 거리이다.
이러한 짧은 거리에서 분자를 조작할 수 있으면, 인간의 암을 선택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분자 크기의 공격조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분자간에
존재하는 희한한 성질들을 이용해서 철강보다 강한 물질, 지금 쓰이는
레이저보다 더 아름다운 빛을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흔히 미래를
나노시대라고 한다. 필자는 나라(나노·테라)산업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미래 나라산업에서 얼마나 가능성이 있으며, 세계 1위를 할 수
있을까? 답은 물론 예스이다. 이유는 우리에게 우수 핵심 인력으로
무장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라는 반도체 축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반도체산업은 앞으로 5년 내에 나노 크기를 조작하게 된다. 그리고
테라급 저장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성공을 위해 그 국가의 최첨단
진공기술·장비기술·재료기술 등이 밑받침되어야 한다. 따라서
반도체산업은 단지 반도체 칩을 제조해 영업행위를 하는 산업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반도체산업에 의해 나라의 미래 나노·테라 분야의
기초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하이닉스 문제를 단순히 부채가 많은 한 개 회사의
처리문제로 보지 않는다. 단기적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정부의 해법이 정답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마이크론이라는 매수대상을 단독으로 정해 두고 협상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가치를 지나치게 저평가했다는 비판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엄청난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장기적으로 수를
읽는 태도가 중요하다. 더구나 세계 3대 기업인 하이닉스의 기술경쟁력이
외국 경쟁사에 비해 우수하다는 것, 그리고 우수한 경영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기술 전문가 및 컴퓨터업체의 공통된 견해에서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삼성전자·하이닉스를 축으로 한국의 반도체산업 및 미래
나라산업의 그림을 그렸다. 장비·재료 산업 또한 이 축 내에서 이제 갓
태동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공계 학생들이 반도체 강국에
바탕을 둔 나노·테라 산업을 이룩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이 한 개의
축을 쉽게 포기하지 말자. 지단 한 명이 빠진 데 대해서도 프랑스 국민이
저렇게 걱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朴榮俊/서울대 교수·전기공학·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