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목말랐던 월드컵 첫 승은 그들의 가슴에서 나왔다. 폴란드 엥겔
감독도 두려워 했던 '12번째 대표선수'들. 어느덧 경기장은
"대~한~민국"이란 구호로, 빨간색 상의로 하나가 됐다.
「경기장의 1등 조역」 응원단.
그들은 경기 전, 한국선수들이 몸을 풀 때부터 '아리랑'을 부르며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골대 뒤편에 자리한 붉은 악마 5000여명은
'WIN 3:0'이란 글자를 카드섹션으로 아로 새겨 폴란드 선수들의 기를
죽였다. "오~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목소리는 더욱 강렬해졌다.
붉은 악마들이 원을 그린 붉은 스카프는 경기장을 온통 붉은 물결로
뒤덮으며 장관을 연출했다. 경기시작 전 애국가가 연주될 때는 골대 뒤
관중석에서 손에 손을 잡고 대형 태극기를 '게양'했다.
붉은 악마가 전반적인 응원을 주도했지만, 너도 나도 붉은옷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일반 관객들의 힘은 더 강했다. 전반 초반 한국 선수들이
주춤하는 사이 붉은 악마 반대편 골대쪽의 시민들이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중앙선 부근에 위치한 폴란드 응원단들이 '폴스카 폴스카'를 연발하며
응원의 목소리를 높이면, 그 옆의 관중들은 '짝짝,짝짝짝
대~한민국'으로 응수했다. 전반 초반의 부진에도, '오~필승 코리아'
'아리랑'을 이어갔다.
전반 25분 황선홍의 첫 골은 경기장을 뒤집어 놓았다.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환호를 보냈고, 붉은 악마들 가운데 상당수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형 'Red Devil(붉은 악마)' 깃발과 태극기가 다시 관중석을
뒤덮었다. 흥에 겨운 관객들의 파도타기 응원이 경기장을 휘감았다.
후반 7분께 유상철의 두 번째 골이 터진 이후엔 아예 자리에 앉지 않은
채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관중석에
등장한 대형 태극기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떠다녔다.
붉은 악마 회원인 배두한(26·회사원·부산 동래구 명륜동)씨는 "첫
골이 들어갔을 때 주변의 사람들과 얼싸안고 환호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며 "너무 흥분이 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빨간색 뿔·고무장갑·가발로 무장하고 종이로 된 황금색 삼지창을 든
'붉은 악마' 회원 전지영(18·안양예고2)양은 "오전 9시 서울
잠실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회원들과 함께 부산에 왔다"고 말했다.
최용수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온 동래고 후배 축구선수 30여명은 'Be
the reds' 셔츠를 입고 와서 "최 선배가 선발로 뛰지 못해 아쉽지만
결정적 순간에 투입돼 건재한 독수리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인제대 의과대 학생 20여명도 모두 태극기를 망토처럼 어깨에 둘러
매고 머리엔 빨간 띠를 두른 채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다.
최익준(24·의학과3)씨는 "객관적인 전력으로 16강 진출은 무난하고
이후 4강까지는 국민적 응원의 힘으로 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한편 폴란드에서 아내·친구와 함께 지난 2일 입국, 이날 아침 부산에
왔다는 폴란드인 피오트르 쿠르코프스키(42)씨는 태극기와 폴란드 국기를
묶어 흔들면서 "두 팀이 2대2로 비겨 16강에 같이 진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경기장 주변 10여명의 폴란드 인들은 "폴스카 골라(폴란드여
골은)!" 등 구호와 전통민요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마치에르
스피제스키(31)씨는 "사업차 홍콩·영국을 거쳐 3일 입국했다"며
"폴란드가 2대0로 이길 것으로 예상했는데 곳곳에서 빨간색 옷을 입고
응원하는 한국인들을 보는 순간 「그게 아니구나」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폴란드인 응원단 800여명이 경기를 관전했다.
교통 통제를 맡아 이날 오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경기장 주변에서
근무한 부산 동래경찰서 소속 의경 유장훈(21) 순경은 "또래 응원단과
함께 경기관람과 응원을 하지 못해 아쉽지만 힘든 줄 모르겠다"면서
"시민들이 교통통제에 잘 따라줘 고맙다"고 했다.
폴란드 팀 통역 자원봉사를 맡은 장해근(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4년)씨는 "폴란드인들이 한국인처럼 정이 많고 열정적이다"며 "폴란드
경기가 있는 전주·대전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폴란드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통역 봉사로 돕겠다"고 했다.
빨간색 응원복을 입고 아내와 경기장을 찾은 전근수(61)씨는 "경기장에
직접 오니 시원하고 젊어진 느낌"이라며 "경기 승패에 연연하기보다
전체적인 운영을 잘해 성공적으로 마쳤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지난 2일 파라과이―남아공 전 곳곳에서 암거래를 했던 암표상들은
이날 경기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암표상은 "밤새도록 줄을 서
표를 산 시민들 때문에 2·3등석 표는 한장도 사지 못했고 구입한 1등석
표 6장도 팔지 못했다"며 울상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