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빠를 죽게했어”… 자책감 깃든 ‘喪服’##
루이 말 감독 '데미지'(Damage)는 중년의 사내가 '아들의 연인'과
육체관계에 빠진다는 설정만으로도 충격을 안겼다. 그런데 이 영화를
'위험한 불륜 영화'쯤으로 알고 들여다보던 관객을 다소 의아스럽게
하는 것은 영화속 안나(줄리엣 비노쉬)가 거의 모든 장면마다 입고 있는
검은 의상들이다. 그녀는 딱 한번씩만 흰색-붉은색 재킷을 걸칠뿐 나머지
모든 장면, 특히 중년 사내(제레미 아이언스)과의 은밀한 만남 땐 한
번도 예외없이 블랙 일색의 옷을 입는다. 브래지어와 스타킹까지 늘 검은
색이다.
왜 검은색일까? 우아하고 고급스럽다는 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국내의 한 정신과의사는 이 옷들을 일종의 '상복'(喪服)이라 해석했다.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자살한 오빠에 대한 죄책감과 추모의 정을 표현한
옷이라는 것이다. 무슨 죄책감인가? 밀회를 거듭하면서 안나가 젊은날
충격의 사연을 고백한다. 안나가 너무나 좋아했던 친오빠가 어느 밤
여동생 방에 들어와 같이 자고 싶다고 했지만 안나는 오빠를 내 쫓았고
다음날 아침 오빠는 자살했다는 것. 그녀는 이후 "내가 윤리를 따르려다
한 남자(오빠)를 죽게 했다"는 자책감을 마음의 큰 상처(데미지)로 안고
있었고, 이 상처를 치유하려는 마음속 '방어 메카니즘'이 과장된
몸짓으로 사회가 용납않는 남자 관계에 몸을 던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속죄를 위해 밀회하는 그 순간의 검은 의상은 죽은 오빠를 추모하는
상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안나는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
종반, 한 가정이 결국 산산조각 났을때 안나가 왜 중년 사내곁에 머물지
않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이 열쇠를 알면 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