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을 열흘 남짓 앞두고 3개 공중파 방송사는 본격적인 월드컵
방송 체제에 돌입했다. 각 방송은 축구 팬을 끌어들이려고 캐스터와
해설위원 듀오의 경쟁력과 차별성을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환상의
입심', '냉철한 분석력과 깊이 있는 해설', '풍부한 현장 경험' 등
어떤 중계를 봐도 만족할 것 같은 그럴 듯한 중계팀 라인업이다.

이 같은 열띤 '호객 행위' 끝에 본 최근 월드컵 대표팀의 평가전
중계는 꽤 실망스러웠다. 시청자의 '들을 자유'를 배려하지 않는
일방적이고 과다한 '음향 공세'로 청각 조직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마치 중계팀의 순발력, 어휘력, 정보 수집력을 과시라도
하듯 90분 내내 끊임없이 토해내는 상황 설명과 감각적인 비유, 그리고
환호와 탄식까지. 시청자들에게 한 박자 쉬어 갈 틈이라곤 주질 않을
뿐더러, 때로 그 어떤 간섭이나 도움 없이 스포츠 특유의 감동을 현장의
그림과 소리만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욕구는 철저히 무시되는
느낌이다.

미국의 전설적 스포츠 캐스터 딕 엔버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Oh
My…(세상에…)"란 감탄사는 표현의 독창성이나 기발함 때문에 대중적인
지지를 얻게 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감동이 북받쳐 오르는 스포츠
현장에서 그 이상의 '음향'은 불필요함을 일찍이 깨닫고 적절한 선에서
침묵과 절제를 선택한 그의 배려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속담이 축구 중계에도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라디오
중계 방송에나 적합한 '초 단위'의 상황 설명은 시청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결례가 될 수도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월드컵을 준비하는 이
땅의 축구 팬들에게 '침묵의 미덕'도 맛보여 줄 수 있는 방송이길
바란다.

( 최준서·스포츠전문사이트 후추 닷컴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