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락가락하고, 바람이 불고, 쌀쌀했다. 총 5개의 실책과 실책성 플레이가 계속 나온 느슨한 경기였다.

그러나 1회초 4-0의 리드를 지켜내지 못한 것은 에이스로서 할 말이 없었다.

박찬호는 날씨 탓인지 몸이 굳어 있었다. 부드러운 동작으로 공을 던지지 못하니 강속구의 스피드는 대부분 시속 145km대에 머물렀다. 정신적으로도 소극적인 점이 드러났다. 경기를 빠르게 진행하지 못한채 계속 마운드를 서성거렸고, 자주 스파이크의 바닥에 붙어있는 진흙을 떼내느라 시간을 끌어 관중들의 야유까지 받았다.

4회말 1사 만루의 위기를 침착한 플레이로 병살 처리하며 안정을 찾고, 경기 템포에 가속을 붙이며 7타자를 연속 범타로 잡기도 했다.

박찬호는 데뷔후 2~3년간 아주 빠른 투구 모습을 보였다. 공을 받으면 타자들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몰아 세웠다. 빠른 강속구와 뛰어난 커브, 그리고 체인지업의 좋은 레파토리를 지닌 투수라면 마운드를 서성거릴 것이 아니라 타자들을 빠른 템포로 공략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래야 야수들도 경기에 집중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임시 1루수' 램(3루 주전에서 밀려 3루와 외야 수업 중)과 워낙 수비력이 엉성한 우익수 곤잘레스의 플레이가 악재로 작용했지만 에이스가 4점차의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것은 동료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투아웃 후에 연속 안타로 점수를 내준 것이나, 하위 타선에게 결정타를 계속 허용한 것이 에이스답지 못했다. 이틀전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9번 산티아고에게 2회에 2루타, 4회에 4구, 그리고 7회에는 3루타를 허용했고, 후보 포수인 8번 월벡에게도 7회말 2루타를 맞아 결국 강판의 빌미가 됐다.

바람과 오락가락하는 비, 쌀쌀한 날씨 그리고 미끄러운 마운드까지 투수에게 유리한 상황은 전혀 아니었지만 박찬호 역시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다음 캔자스시티전의 분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