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최고의 필름 페스티벌인 제55회 칸 국제영화제가 15일 저녁 7시
25분(현지 시각)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의 '페스티발 궁'(Palais de
Festival)에서 막을 올렸다.
떠오르는 프랑스 신인 여배우 비르지니 르드와엥의 사회로 진행된 칸
영화제 개막식의 최고 스타는 오프닝 영화인 '할리우드 엔딩'의 감독
우디 앨런이었다. '가장 유럽적인 미국감독'으로 꼽히는 우리 앨런은
프랑스에서 특히 인기가 높지만 칸 영화제가 자신의 영화를 3차례나
초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칸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칸에 도착한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벌써 턱시도까지 빌려 놓았는데
내빼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익살을 부렸다. 칸을 외면해왔던 '거장'의
전격 방문에 감읍해서일까, 7시 20분 우디 일행이 메인 상영관 뤼미에르
대극장 안으로 들어서자 장내를 메운 영화팬들은 뜨거운 기립 박수로
맞이했다. '원초적 본능'의 월드 스타 샤론 스톤의 섹스 어필도, 칸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거머쥐었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스타성도 우디
앨런을 향한 프랑스인들의 사랑과 존경 앞에선 무기력하기만 했다.
칸 영화제 열기는 개막 한시간 전 쯤 '프랑스의 스필버그' 뤽 베송이
페스티발 궁 붉은 카펫을 밟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스웨덴의 국보급 배우 막스 폰 시도우를 비롯해 줄리 델피등이
나타났고, 밀라 요보비치는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춤추는 제스처까지
선보였다. 경쟁부문 심사위원 샤론 스톤, 양자경 등이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는 더욱 높아졌고, 7시 무렵 심사위원장 데이비드 린치가 등장, 9인
심사위원 전원이 집결하자 10분에 걸친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카메라맨들은 "샤론, 샤론"을 목청껏 외쳐댔다.
그러나 주인공 우디 일행이 출현하자 환호는 이내 옮겨져,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우디 바로 옆에는, 한때는 입양딸이었다가 연인의
자리에 오른 순이가 손을 꼭 쥔 채 함께 해 단연 눈길을 끌었다. 마치
2002년 칸의 히로인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7시 30분부터는 칸
영화제 역사를 일별하게 해 준, 조직위원장 질 자콥의 26분짜리 연출작
'칸 이야기'(Histoires de Festival)가 상영되어 개막식 분위기를 더욱
달궜다. 2부 순서에서 질 자콥 칸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등장해 우디를
소개했다. 질 자콥이 우디를 추켜세우는 일장 연설을 하는 내내 우디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팔짱을 끼는 등, 어쩔 줄 몰라 하는 특유의
제스처를 취해 좌중에 웃음을 듬뿍 안겨줬다.
개막 행사에 이어 8시 10분부터 본격 상영에 들어간 '할리우드 엔딩'은
한물간 노감독 의 6000만불짜리 대작 만들기를 싸고 벌어지는 한바탕
해프닝을 그린 작품. 할리우드는 물론, 우리 알렌 자신을 향한 성찰과
조롱까지 내포한 코믹 드라마다. 주목할만한 연출 스타일보다는, 시종
웃음을 유발시키는 대사나 연기가 돋보인 '할리우드 엔딩'은 지난해의
'물랑 루즈'만큼은 아니어도 개막작품 역할은 톡톡히 해냈다. 55회 칸
영화제는 2001년만큼은 화려하진 않으나 더 차분하고 진지한 축제를
예고하며 11박 12일의 대장정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뎠다.
( 칸(프랑스)=전찬일·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