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1월 13일,첫 미국 이민선인 갤릭호에 몸을 싣고 하와이에 도착한 김치원씨 가족의 모습.(연도미상)이민 당시에는 두 살짜리 큰딸만 데리고 왔지만 어느덧 대가족이 됐다(위). 하와이의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초기 한국인 이민자의 모습(가운데). 1920년 같은 마을에서 함께 하와이로 떠난 세 명의 ‘사진 신부 ’들.


빛 바랜 흑백사진 속에는 '愛國思想'이란 글씨가 한자로 적혀 있다.
각각의 한자 위에는 'love', 'country', 'think', 'and think
deeply'라는 설명이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 있다. 예비 신랑이 보내온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이역만리 하와이로 결혼이민 갔던 한 '사진
신부'가 자녀들에게 한자 공부를 시키려고 만든 일종의 '교과서'다.
한국 여성 특유의 진한 모성애가 가슴에 와 닿는 사진이다.

내년은 1903년 1월 13일 미국 증기선 갤릭호를 탄 102명의 한국인
이민자가 미국 땅 하와이를 밟은 지 꼭 100년이 되는 해.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세기 우리 동포들이 미국 땅에서 흘린 피땀과 눈물, 고난과
보람의 역사를 당시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18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조선일보미술관(02-724-6328)에서 열리는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 사진전'이다. 전시는 조선일보사와
미주한인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 그리고 KBS가 공동 주최한다.

전시를 통해 공개되는 사진들은 모두 120여점. 주로 하와이 이민자의
삶을 촬영한 사진이다. 크게 '이민의 시작과 정착' '사진신부'
'독립운동의 발자취' '신앙의 발자취' '민족문화의 전승' '왕래'
'문서' 등으로 구분돼 선보인다.

대부분 가족·친지·모임 등에서 촬영한 기념사진이지만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읽으려 노력하다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사모관대·족두리 쓴
전통 혼례식을 재현해 고국을 모르는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아이의
백일날이면 떡과 과일을 쌓아놓고 잔치를 벌인 사진에선 전통문화를 지켜
내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 먼저 정착한 이민자들이 손에 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부두에서 새로 오는 이민자를 환영하는 모습에선
진한 동포애가 느껴진다. 그리고 하루 벌이 수입을 쪼개 '조선독립이
실현될 때까지 독립금을 예약하고 필납키로 맹세'한
'독립금예약서'라는 문서, 독립운동자금과 구호물자를 고국에 보내기
위해 가래떡을 뽑아 파는 사진에선 뜨거운 애국심을 읽을 수 있다.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 100년은 사탕수수농장 노동이민(1903~1905)
사진신부(1912~1924) 평화부인, 유학생 및 전쟁고아들(1947~1967)
자유이민(1967~현재) 등 크게 네번의 물결을 탄 것으로 구분되고 있다.
초기의 이민들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하루 종일
일하고 받은 품삯은 69센트. 빗자루로 땅을 쓸기만해도 돈이
생긴다기에 서자라고 설움 받는 것이 싫어서 예수쟁이라고 놀림 당하는
것이 싫어서 남의 집 살이 하는 부모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자손들을 좋은 나라에서 훌륭하게 교육시키고 싶어서…. 주로 제물포
강화 부평 서울 등지에서 모집된 초기 이민들은 각자 처한 사정에 따라
미국에 간 이유도 다양했던 것으로 당시 설문 조사 결과 나타났다.
1910~1920년대 사진에선 남루한 차림이었던 이민자들이 1950~1960년대로
갈수록 양복과 넥타이에 단정한 양장차림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 그
신분상승 과정에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이 저절로 눈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