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 10일 "현재의 청와대를 영빈관으로
사용하고 대통령 집무실은 국민과 가까운 곳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이 방안은 기존의 구중궁궐 같은 권위주의적 행태를 타개하자는 것으로
보여져 모처럼 산뜻한 소식으로 받아들여질만 하다.
그러나 어린이청소년전문가 입장에서는 좀 다르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고
"청와대는 아예 현재의 자리에서 몽땅 떠나라"는 것이다. 그 자리는
이 나라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 주기에 결코
적절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어떤 곳인가. 일제 침략자들이 당시 경복궁에 총독부를 세우고
이를 뒤에서 내려다 보며 온갖 혹독한 식민통치를 자행하기 위해 북악산
중턱에 잡은 총독관저가 아닌가. 이 나라 팔도강산에 명색이 국가원수가
사용하는 공식청사이자 관저로 쓸만한 자리가 그렇게 없단 말인가.
그래서 하필이면 일본제국주의 총독관저, 바로 그 곳에 지금까지
자리해야 하는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광복을 되찾은지 50년이 넘었다. 청와대가 새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다. 그동안
풍수지리에 의존해 구관을 허물고 신관을 짓는 등 이런 저런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하긴 그 곳을 거쳐간 일제 총독이나 광복후 이 나라 역대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불운했다고 하니 무슨 까닭인지 해괴하다는 생각을
가질 만도 하다. 그러나 풍수지리 때문이 아니라 이 나라 어린이
청소년들이 과연 그 자리의 역사성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그리고 그 자리엔 대표적인 '일제침략사료관'을 1개 지정해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처럼 좋은 역사자료관 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자리야말로 과거 우리 민족이 세계정세를 제쳐놓고 내분에
빠져 우물안 개구리 노릇을 한 결과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또
일제침략자들이 이 나라 이 민족에게 얼마나 악랄한 죄악을 저질렀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일제침략사료관'으로 더 좋은 장소가 있었다면 경복궁 안에
있었던 구 총독부건물이었다. 그 건물이 어느날 갑자기 폭파돼 버렸으니
이제 그 역할을 가장 잘 해 낼 수 있는 곳은 일제 총독관저 자리뿐이다.
그 안에 온갖 침략자료들을 샅샅이 모아 침략사 교육관으로 썼으면
좋겠다. 아픈 역사일수록 되씹고 되씹어서 다시는 그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다짐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왕에 청와대를 이전한다면 한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아예 서울을
떠나라"는 것이다. 지금 수도권의 인구집중은 이 나라가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하다. 수도권 문제는 찔끔찔끔 규제해서 될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 그렇게 해 왔지만 오히려 악화되기만 했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돈이 든다고 반대하는 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시설과
건물들을 활용하면 얼마든지 절약할 수 있다.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은
천문학적으로 클 수 있다. 무엇보다 진정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사랑하고 이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일이라면 청와대 이전
문제는 한시도 지체할 일이 아니다.
( 姜智遠어린이청소년포럼 대표ㆍ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