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2리의 썬크루즈 리조트에서 바라본 정동진 전경.과거 조그만 어촌이었던 정동진에는 이제 숙박 ·민박시설과 공원 ·식당 ·노래방 등이 곳곳에 들어섰다.바로 앞 잔디밭은 ‘조각 공원 ’이고,부근의 배 ·기차 모양 조형물은 이 리조트에서 얼마 전까지 카페로 이용했던 시설이다.멀리 오른쪽 끝에 보이는 곳이 정동진역이다.

"무장공비와 IMF 환란이 우리 정동진(正東津)을 띄워준 일등
공신(功臣)이란 걸 아세요?"

지난달 18일 밤 11시 정동진천(川) 옆 포장마차. 자글자글 달궈진 석쇠에
조개를 굽던 정동진 번영회 최완규(36) 총무는 소주 한 잔을 입안에
털어넣고는 한적한 어촌에서 일약 전국적 명소로 탈바꿈한 이 마을의
변신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정동진이 처음 관심을 끈 것은 물론 드라마 '모래시계'(95~96년
방영) 덕이었죠. 여기에다 96년 북한 무장공비들이 이 일대를 누비고
다닌 덕분에 언론을 타면서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IMF 위기 때는 실직한
직장인, 부도 낸 사업가, 세상 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몰려왔지요. 해
뜨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얻는 곳이니까요."

가슴이 멍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동진의 행정 명칭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다. 걸어서 20여분이면 반대쪽까지 횡단할 수
있는 미니 마을이지만, 기네스북에도 등재된 세계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이곳 기차역은 바닷가와의 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가깝다.

내년부터 고교 2년용 한국지리 교과서(대한교과서판)는 '확 바뀐
마을'의 대표적 사례로 이 곳을 싣는다. 이 책 216쪽은 정동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정(正)동쪽 바닷가에 나룻터가 있는 마을'이라
했던 이 곳은 300여 가구에 인구 1000여명의 평범한 농어촌 마을이다.
한때 탄광이 밀집해 번성하기도 했으며(중략), 이름 없는 간이역이던
정동진은 이제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국민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정동진의 변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걷다보면 마을 여기저기서 쉴새없이
마주치는 모텔이며 민박집, 노래방과 포장마차에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생각하고 찾아온 외지인은 놀라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 곳을 찾는 관광객은 97년 50만명에서 지난해엔 255만여명으로
늘었다(강릉시청). 95년까진 '관광객' 통계를 잡지도 않던 곳이었다.
5년 전 평당 2만~3만원 하던 땅이 이제 300만~400만원을 불러도 매물로
나오지 않는다.

정동진 곳곳에선 농가 헐린 자리에 모텔과 민박용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변영성(53) 정동2리 이장도 철도 건널목 앞의 자기집 터에 숙박업소를
짓고 있다. 변 이장은 "정동진은 이미 농어촌이 아닌 관광촌"이라고
말했다.

강릉시청 집계에 따르면, 정동진 1~2리에만 모텔·여관·호텔이 21개,
민박집이 58개다. '뜨기 전인' 96년에는 통틀어 민박집이 6~7개 정도
있었을 뿐이었다.

변영성 정동진 2리 이장이 70년대말 겨울 찍었던 정동진 전경.이 풍경은 ‘모래시계 ’드라마로 이 마을이 전국적으로 관심을 끌던 90년대 중반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변 이장은 주머니에서 오래된 필름 한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70년대 말
겨울 새마을 지도자였던 변씨가 뒷산에 올라 찍었던 마을 전경이다.
90년대 중반까지 이 풍경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변 이장이 발을 딛고 사진을 찍었던 뒷산 꼭대기의 그 장소에는 지금
2만6000t 규모의 거대한 '크루즈 배' 모양의 건축물이 걸터앉아 있다.
금강산 가는 '봉래호'와 똑같이 생겼고, 실제로 조선(造船)공법으로
완공했지만 정체는 객실 211개 규모의 콘도·호텔 '썬크루즈
리조트'다.

정동진의 '잠재력'을 보고 거액을 들여 이 호텔을 세운 박기열(45)
썬쿠르즈 회장은 "정동진은 제주도 이상의 세계적 관광자원이며, 국제
관광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썬크루즈 앞에는 18홀
규모의 골프장도 들어설 예정이다.

그러나 정동진의 변신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계획없이 마구 이뤄진
'난(亂)개발 관광지화'가 첫번째 문제였다. 하수처리 시설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이 진행되면서 정동천은 갈수록 썩어갔다.

성수기나 연말연시엔 주민들이 바가지 요금을 씌운다는 언론의 비난을
듣기도 했다. 이대종 정동1리 이장은 "주민 사이에는 '우리가 과연 잘
바뀌고 있는 것인가, 훈훈한 옛 인심만 잃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전했다.

최명희 강릉시 부시장은 이에 대해 "주민들이 채 준비할 틈도 없는
사이에 '외부주입' 형의 과분한 성공을 누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정동진은 '모래시계'와 '보고 또 보고' 같은 드라마 촬영,
'해돋이 열차'라는 철도청 기획 상품, 여행사들의 '새해맞이 명소'
이미지 선전 등의 '외부요인' 덕에 주로 인기를 높여왔다.

주민 사이에 '소(小) 지역갈등'도 있었다. 정동진 1·2리는 정동천의
남북에 위치한다. 이 두 마을의 변천사는 얼핏 서울 강북·강남과
비슷하고, 이것이 '남·북 갈등'을 낳았다.

정동진역이 위치한 '강북'쪽의 1리가 애초 '모래시계의
수혜(受惠)'를 입으며 번창했지만, 모래시계 공원이나 썬 크루즈 등
관광명소가 '강남' 쪽의 2리에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이 2리쪽으로 더
몰려들었다. 장춘택(55) 정동리 번영회장은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1리
주민들은 한때 정동진 번영회 활동에 불참하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정동진 주민들은 슬기롭게 문제와 갈등을 풀고 있다.
번영회의 간판 아래 정동진1·2·3리는 물론 인근의 심곡리와
산성우1·2리 주민들이 모두 모이기 시작했다. '정동진'이라는 특급
브랜드를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도움되는 '윈·윈 게임'을 하자는
공감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재작년부터 정동진 관련 종합 사이트 '정동닷컴(www.jungdong.com)'을
운영하고 있는 박정훈(36) 대표는 이런 해석을 내놓았다.

"주민들은 '정동진 붐'이 일과성(一過性)일 것이라고 보았고, '식기
전에 먼저 먹는 게 임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젠 붐을 앞으로도
지속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싹텄다. 그래서 번영회를 중심으로 '제 살
깎아먹지 말자'는 논의가 진전된 것이다."

이대종 정동1리 이장은 "정동닷컴 같은 인터넷 사이트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외지인·관광객의 매서운
비판·질책과 격려가 전해져 오면서 주민들이 "이러면 우리가 몹쓸
사람이 된다"고 반성하게끔 됐다는 얘기다.

주민들은 올해 들어 번영회를 통로로 삼아 하수종말처리장 예산도 땄고,
숙박업소 협의회 등을 조직해 숙박료 상한선도 정했다. 번영회는 또
강릉시와 체계적인 개발안을 준비 중이다.

과연 정동진의 발전은 영원할까? 기자의 질문에 번영회장 장씨는
'탑스빌'이란 모텔을 운영하는 4부자(父子)를 만나볼 것을 권했다.

30년간 정동진 이장을 지냈던 이정기(79)씨는 지난 2000년 이 모텔을
짓고는 인천·강릉 등지에서 직장 다니고 있던 세 아들을 정동진으로
불러모아 "이제 너희가 고향을 가꿀 때가 됐다"고 당부했다. 지금 이
씨의 장남 선종(45)씨와 3남 석종(36)씨는 모텔을, 차남 호종(39)씨는
건물 1층에서 횟집을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자녀들을 고향에 불러들인 이정기씨는 요사이 이 곳 노인회원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나디며 동네 쓰레기를 줍고 폐품을 수집한다.
'어르신'들이 자발적인 청소에 나서자 동네 청년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외부효과'에만 의존했던 '정동진 만들기'에 드디어
주민들이 나선것이다.

( 정동진(강릉)=張源埈기자 wjjang@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