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빛으로 바랜 젊은 날의 어머니.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이충걸씨는 그때 나이 10살이었다.


퀴리부인도 김활란도 아닌 별 볼일없는 여자. 하지만 아들이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다 알고 있는 마법사. 깊은 우물 속 두레박처럼
어머니는 철부지 아들에게 일상의 평화와 행복을 끊임없이 퍼올려준다.

그렇다고 둘 사이가 늘 다정한 건 아니다.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안가고,
나잇살만 먹었지 신실함과 품위를 갖추지 못한 아들은 어머니의 목구멍을
치밀고 올라오는 화딱지 방망이다. 실밥 터진 맛에 입는 청바지 밑단을
어느새 깔끔하게 손질해놔버리고, 옷같지도 않은 옷을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다. 인고와 관용의 모성 신화를 거부한다. 노란 달빛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돌아온 아들에겐 더더욱 우악스러워진다. "되놈처럼
얼굴에 살만 뒤룩뒤룩 찐 놈한텐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가 분명히
그랬지?"

'어느날 '엄마'에 관해 쓰기 시작했다'(디자인하우스)는 감수성
충만한 글쓰기로 소문난 'GQ코리아' 편집장 이충걸씨가 "한번도
스스로를 위해 면류관을 쓰지 않은" 어머니 이남규씨에게 바친, 콧등
시큰하며 유쾌한 헌사다.

아들은 바로 이씨 자신이다. 매사에 충돌하고 불평을 터뜨리면서도
아들은 어머니가 본질적으로 항상 옳다고 믿는다. 그녀를 위해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백일홍과 채송화가 있는 화단을 선물하고 싶고, 어머니의
모습을 더 많이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배우리라 다짐도 했다.

하지만 게으른 아들은 어느것 한가지 실천에 옮긴 것이 없다. 그 사이
어머니는 나이 들고 병 들었다. 길이 조금만 경사져도 '젤리처럼
주저앉아' 가쁜 숨을 고른다. 어버이날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아들에겐
"너는 매일 어머니날처럼 대해주잖아" 라며 위로한다. 아들이 해줄 수
있는 건 결국 아첨뿐이다. "엄마, 엄마는 천사지? 근데 옛날엔
날아다녔는데, 지금은 뚱뚱해져서 못나는 거지?"

(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