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테이프는 지난달 13~14일 최규선씨가 본가가 있는 광주와 선산 소재지인 전남 영암을 오가는 차 안에서 녹음한 것으로, 전기작가 허모씨와 한 측근이 이 차량에 동승했다. 약 50분 분량으로 본사는 당초 소형 디지털녹음기를 이용해 녹음한 것을 1개의 테이프에 옮겨담아 최씨의 갖고 있던 것을 지난 6일 입수했다.)

◆ “나라를 살려주십시오”

오늘, 오늘이 3월 몇일이죠? 4월? 14일 오늘 아침에도 청와대 민정비서관 김현섭씨하고 통화를 했습니다. 그도 “걱정을 많이 했다”고 했다. 김현섭씨는 “검찰이 박사님(최규선 지칭) 소환을 월요일쯤 해야할 것 같다는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검찰관계자가 이야기 하기를 지금 별다른게 나온 것이 없어 갖고 검찰도 곤혹스럽다고 그러는데 제일 문제는 지금 박사님 입에서 LA, LA에 있는 사람(김홍걸씨를 지칭) 부분은 박사님이 어떻게 진술하냐에 따라 지금 검찰도 떨린다. 청와대 안도 모두가 떨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저는 100만원짜리 수표 300장 3억을 바꿔가지고 그 양반에게 준 부분, 그건 수표로 줬기 때문에 추적하면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정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소환을 좀 늦춰야 겠습니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늦춰주십시오. 아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고 하니까 김현섭씨는 “아무튼 박사님 박사님 나라를 살려주십시오. 이 나라를 살리셔야 됩니다. 박사님이 세우신 우리 국민의 정부 아닙니까”하며 나를 달랬습니다.

아~~(깊은 한숨을 쉬며) 내 011-9XXX-7XXX의 전화내역을 보더라도 김현섭 민정비서관의 핸드폰 번호는 017-7XX-7XXX 수차례 통화를 했고, 오늘 아침에는 우리 미래도시환경에 있던 내 비서 박XX인가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비서 이름으로 개설한 내 모바일폰 011-9XXX-7XXX으로도 오늘(4월 14일) 오전 10시경 통화를 했습니다.

◆ 대책회의와 밀항 권유

또 여기서 지금 그제(12일)부터 이만영 정무수석실 정무비서관과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최성규, 또 2명의 국정원 직원들이 모여가지고 회의를 여러차례 가졌다고 그제부터 최성규씨가 나한테 말해왔습니다. 내가 “내용이 무엇입니까”하고 (최성규에게) 물어보자 “아 출국금지가 되기 전에 최규선이가 떠나버렸다고 하는 건데 이제 출국금지가 돼서 가지도 못하고 또 검찰에 출두하면 최규선이 말 한마디에 우리 정권이 잘못되고 대통령이 하야해야하는데 걱정이다. 이야기를 하자. 거기서 한 인사가(누구라고 말은 안했습니다) 부산에서 밀항을 해가지고 밖으로(일본으로) 빼내면 어떻겠느냐? 그런 말이 나왔다”는 말을 내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쩝 “나는 밀항은 않습니다. 밀항하면 제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데, 그리고 내가 밀항하게 되면 미국으로 갈 수 있는 겁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최성규씨가) “그럼, 미국 갈 수 있다. 일단 가버리자. 그리고 네가 정 혼자 나가기가 그러면 내가 너를 데리고 나가주마”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을 해서 나는 오죽했으면 이런 말까지 하겠느냐.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인 줄 알았습니다. (최성규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은 청와대 하명사건을 직접 수사하고 있는 기관의 장입니다.)

그랬더니 어제 그분(최 과장)이 나와 친분이 두터운데 그분도 괴로워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설득하려고 그 양반을 내세운 것 같애요. 정권이. 이제는 최성규 과장님의 부인까지 나서가지고 울면서 “꼭 같이 내 남편하고 떠나달라 2~3년이면 된다. 꼭 같이 떠나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어제 내가 광주 8시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어(회상하는듯), 차 타고 오는 도중에 최성규 과장이 나한테 전화를 해서 “강남에서 김포공항 가는 길목입니다. 아, 옆에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내려갖고 아무도 없을 때 꼭 좀 전화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전화를 해보니까 “밀항을 해가지고…다 준비가 돼 있다. 규선아,떠나 버리자.” 그래서 내가 “아니 내가 죄가 없고 혐의가 없는데 왜 자꾸 이렇습니까”하자 (최성규는) “아니다. 나라가 뒤집어진다. 네가 들어가면, 지금 안된다. 그 시간을 벌고 있는 거다. 검찰도 지금 청와대도 난리고 나 역시도 괴로워서(울먹이며) 못살겠다. 또 짐 싸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어제 이야기입니다. 4월 13일 토요일 오후 6시였습니다. 8시 비행기는 좀 빨리 도착했거든요. 그래서 한 6시 반 내지 7시 사이의 대화 내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를 상대로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밀항을 권유했지만 저는 “내가 왜 그럴 필요가 있느냐 조금 생각해보겠습니다”고 했죠. 그건 내가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었고 왜 이렇게 밀항을 권유하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돌아오는 한 시간 동안에 비행기 안에서 저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들은 내가 없어지는 것이 이 사건 무마의 첩경이라고 판단했던 겁니다. 그게 해결책이라고 본 거죠. 그러면 밀항을 하면 내가 없어지느냐? 그게 아닙니다. ‘아, 그렇다면 나를 죽일려고 하는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위태로움을 느껴서 제가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하는 겁니다. 016-6XX-2XX0이 최 과장의 핸드폰입니다. 저와의 통화 내역을 보시면 알고요. 우리 형님이신 이XX 형이 옆에서 지켜보는 증인입니다. 증인으로 나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음~ 어제도 내가 집으로 돌아와서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 아버지를 뵙고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기도 힘들고, 또 아 오늘 일요일날 지금 선산에 가는 길인데요. 오늘 몸이 극도로 피곤하고 또 수족 떨림도 심하고 심장이 답답함을 느껴 제가 병원에서 하루 정도 쉬어야 겠다하고 광주에 있는 XX병원에 어렵사리 병실을 구해서 응급실을 거쳐서 입원을 하루 입원을 했는데, 저한테 연락이 안되자 최 과장은 우리 XX형에게 수차례 밤늦게 전화를 하면서 내가 광주를 내려가겠다. 꼭 규선이 좀 보게 해주라고 애걸복걸 하는 것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오늘 밀항을 계속해서 권유하는 것도 나는 이러한 각본 하에 밀어부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최성규 특수수사과장과의 인연

내가 1998년 9월 9일에 사직동팀 내사에 이어 특수수사과의 수사를 받을 때 당시 제 1반 반장으로 날 직접 조사했던 장본인인이 최성규이고 김XX 수사관입니다. 그 인연으로 후에 내가 무혐의로 처분을 받은 뒤 “청와대가 골인(구속)시키라 했는데 제발로 걸어간 놈은 나간 놈은 15년 특수수사관으로 지낼 동안 너 하나뿐이다. 너같은 놈은 내 평생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 때 수사과에서 걸어 나올 때 김수철 수사관이 나를 차에 태워주기도 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김XX 수사관하고 후에 몇 번 만나 술도 몇 잔 했습니다만 최성규 실장은 그 후 전남 도경 수사과장을 거쳐서 이무영 청장 시절에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저와 만나는 횟수도 빈번하고 자주 어울렸습니다. 쩝. 최성규 과장은 김홍일의원이 후원자입니다. 거기에 보좌관이었던 이만영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최 과장과) 아주 막역지간입니다. 그래서 일개 비서관이 아닌 이만영씨는 권력핵심의 돌아가는 내용도 어느 다른 수석비서관보다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상대하는 사람들 또한 다른 일반 비서관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과 최성규 과장이 지난 3~4일 전부터 수차례 회합을 갖고 마침내 내린 결론이 밀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밀항을 하더라도 최규선이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저는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 이 녹음에서 다루지 않고 이런 정황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 “보험 들려고 홍걸이에게 돈줬다”

그래서 저는 살렵니다. 살고 어, 늘 떳떳하고 또 김홍걸 부분도 내가 줬던 것 줬고 빌려준 것 빌려주고 갚아준 건 갚아줬습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나 그 아들인 김홍걸로부터 (강한 어조로) 뭐 하나 득본 게 없습니다. 내가 김홍걸이에게 돈을 줬던 것도 내가 정당하게 준 돈이었지만 보험 들려고 줬던 돈입니다. 워낙 저는 (이 정권으로부터 당한 일 때문에) 피해망상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홍걸이에게 돈을 줬던 것입니다. 다른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 “뽀빠이처럼 DJ에게 충성했다”

하~~(한숨을 쉬며) 저는 이 정권 탄생에 기여를 했고 대통령도 저에게 97년 12월 20일 대통령 당선 직후에 (전화를) 걸어서 “창고가 비었네. 자네하고 나하고 나라를 살리세. 자네는 그런 재주가 있고 능력이 있네. 내가 사람볼 줄 아는데 자네는 정치적으로 대성할 것이네”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저는 그야말로 옛날에 유명한 만화에 나오는 뽀빠이처럼 했습니다. 그 왜 시금치 먹으면 뽀빠이가 힘이 100배 1000배 올라가는 것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온 힘을 다해서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것도 50년만의 정권교체를 이룬 대통령이 당선 하루만에 나를 불러서 이런 이야기를 해준 것에 대해서 저는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저는 DJ를 신처럼 worship(숭배)했던 것입니다.

◆ “알 왈리드 왕자 방한 주선”

온 힘을 다해서 저는 알 왈리드 왕자를 97년 12월 23일 서울로 데려오게 됩니다. 그 때 (대우) 김우중 회장으로부터 알 왈리드 왕자가 서울에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에 대통령께 , 아니 당선자께 보고했더니 대통령 당선자는 저를 삼청동 안가에 불렀습니다. (당시 삼청동 안가를 썼습니다. 일산 사저가 너무 멀어서. 바로 위에 인수위원회가 있고 아래에 청와대가 있죠. 청와대 바로 옆 비서실장 공관 건너편에 당선자 안가가 있었습니다. 거기는 이미 청와대 경호원들이 서 있는 (사실상의) 청와대였습니다.

IMF시절이었던 인수위 시절, 대통령 당선자는 이미 국가원수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큰 거실이 있고 오른쪽 큰 거실 왼쪽으로 식당이 있습니다. 오른쪽으로 쭉 들어가면 끝부분 오른쪽 안방에 대통령 침실이 있고 왼쪽에 서재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들어가는 현관은 계단을 타고 올라갑니다. 2층으로 된 집이었는데 1층은 차고고 오른편으로 계단이 나 있습니다. 쭉 올라가면 오른쪽으로는 꽤 넓은 정원이 있고 왼쪽으로는 현관 들어가는 데가 있습니다. 현관을 들어가면 마루위에 올라서면 마루 올라서서 왼쪽에는 전부다 경호원들입니다. 그때 이재만 수행비서가 거기 있었고, 또 김정기 현 대통령 경호실 수행부장도 거기 있고, 김종상 현 운행부장 그러니까 대통령 차 기사입니다. 지금은 운송부장 또는 운행부장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장옥주. 현 3급 대통령비서면서 여잔데요. 그 장옥주가 나를 안내해가지고 서재가 아니고 안방으로 안내를 했습니다.

◆ “김대중 대통령, 대우·현대 찍어서 도와주라”

그가 보고를 하자 대통령께서는 “규선이, 대우를 도와주소. 내 대통령 당선되는데 큰 힘을 발휘했네. 그리고 김우중씨 같은 사람 없네.” “아 그러게, 당선자님 저에게 직접 전화까지 했습니다.” “그래 그 사람 그럴 사람이야. 그 사람은 도우소. 그리고 차기 전경련 회장이 될 것이네.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네. 그리고 이 회사 저회사 만나게 하지마. 그냥 대우만 만나서 투자 유치를 시키게”. “알겠습니다.”

그래 가지고 저는 대통령 당선자의 그말을 듣고 ‘아 대우를 밀어야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알 왈리드 왕자가 대우에 당시 환율이 1800원일때 1억 5000만 달러(25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지금도 큰 돈이지만 1달러가 아쉬운 판에 실로 국가로 봐서도 엄청 큰 것이었습니다. 대우는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그 많은 잘 나가는 건실한 회사를 내버려두고 왜 하필 대우일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이러한 뒷이야기를 저는 역사에 남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후 현대도 대통령 당선자가 찍어줬습니다. 그래서 현대자동차에 5000만달러 투자가 이뤄지게 됩니다. 저는 이러한 노력을 하면서도 당시에 정동영씨도 저한테 저를 불러서 그랬고 한화갑씨도 불러서 그랬고, “나를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만나봤습니다. 그 사람들은 누구냐하면, 한화갑씨는 대림의 전무를 만나보라고 했었고요. 그 때 투자유치 문제였습니다.

정동영씨 소개로 나와 만나기로 한 사람은 컨설턴트였습니다. 외국 금융회사에서 파이낸싱해주고 컨설팅 피(fee)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액수가 이렇게 클 진대 합법적인 이자만 해도 당시 한화로 계산하면 300억 ~400억원 쯤되는 그야말로 평생을 통해 만져 볼 수 없는 거금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공적을 통해서 나라를 구하는 것을 통해서 크리라, 내가 돈에 얽매이면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대우 김우중씨가 건넸던 7억원도 거절했고 ...(생각하다) 또 현대로부터는 돈 한푼도 안받았고요. 말할 것도 없이 줄 수가 없죠. 알 왈리드로부터도 단 돈 1원 한 푼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기록을 위해서 남기자면 내 생일날 알 왈리드가 도합 50만불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만불씩 세번에 걸쳐서 돈을 보내겠습니다하고 직접 보내지 않고 아~ 도합 50만불입니다. 죄송합니다. 50만달러를 저에게 보내겠습니다 해서 30만불은 아 30만불은 한국으로 보내겠습니다. 그게 권.. 아 유종근 지사를 통해 알게된 권아무개란 이름을 나중에 남겼습니다. 알 왈리드 왕자는 “당신처럼 해피한 사람은 못 봤다. 대우 현대 사람 만나면 당신 돈 좀 받는 줄 알았다. 그것도 몇 백만불은 받겠지 최소한. 근데 돈 한푼도 안받았다는 보고를 아래사람에게서 받고 그것을 직접 확인해봤다. 정말 안받았더라. 당신은 나의 친구다”고 했습니다. 나는 왕자에게 말했습니다. 부자래서 안 받은게 아닙니다. 한 푼 두푼이 급한데 그리고 대통령이 나에게 말해줬습니다. 정치적으로 대성한다고. 저는 그렇게 사사로운 것에 얽매일 수 없었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자는 나의 등을 두드려줬습니다. 아마 그러한 인상이 친분관계를 오랫동안 맺는데 기여를 했을 겁니다.

◆ 조지 소로스 초청

제가 그렇게 노력해온 조지 소로스 또한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 처음으로 맞는 공식행사의 귀빈이었습니다. 1998년 1월 3일 김포공항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소로스 집에 가서, 아니 휴가를 보내는 곳까지 가서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저는 1월 2일날 먼저 귀국을 해가지고 당시 쉐라톤 워커힐에서 대통령이 되시고 나서 첫 휴가를 보내고 있는 대통령을 찾아갔습니다. 대통령이 불러서 갔습니다. 청와대에서 불이 나게 전화를 해서 나하고 통화가 안되자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를 찾았습니다.

연락이 안되는 게 아니라 제가 핸드폰이 안되는 지역에 있었는데 대통령은 대뜸 저에게 화를 내시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자네 찾느라고 우리가 난리가 났다. 내가 휴가중인데도 자네 목소리를 들어보려고 이렇게 휴가를 못보내고 있네. 빨리 오소.” 그래 가지고 제가 쉐라톤 워커힐 맨션 VIP맨션으로 갔습니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벌써 응접실에 여러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나를 보고. “스파크(?)납니다. 당신이 2인자입니다. 2인자. 대통령께서 휴가 보내면서 (정치인 등이) 서로 오겠다고 난린데 다 미루고 최규선이 어딨냐고만 찾고 있습니다. 정권 2인자 최규선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오른쪽에 있는 대통령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 대통령께서는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근데 저는 세배를 못드렸습니다. 정신이 없어가지고. 그 때 세배를 했어야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까 대통령은 저에게 세배돈을 주려고 했답니다. 그러자 “어서 오소 어서 오소” 그러면서 나를 룸쪽으로 안내했습니다.

"자네가 나라를 살리네. 소로스 들어오지?"
"예. 내일 들어옵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됐어. 사람들은 소로스 보고 투기꾼이네 어쩌고 그래요. 모르는 소리에요. 소로스가 어때서? 세계적인 투자가고. 철학가에요."

그렇게 소로스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우리 시장이 세계에 알려져야 하네. 소로스도 한국에 투자한다는 게 알려져야지. 세계적인 투자가들이 한국에 몰리네 .자네가 12월달에 대우에 MOU(투자양해각서)를 맺게 해준 알 왈리드도 억만장자 맞지? 내가 편지보고 알았어. 자네는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아는가? 자네는 나보다 더 훌륭하네.”

그냥 말할 수 없는 격찬을 늘어놨습니다. 대통령께서 그러는 사이 장옥주가 피자를 가져왔습니다.
"자네 피자 좋아하지 예. 나도 피자 맛있어 먹소." 그러면서 나에게 피자를 권해서 먹었습니다.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제 자네 서열이 틀려져 버리네. 이럴 때일수록 자네는 내 밑에서 커야 하네." "아이고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대통령님." (그는 청와대 비서실 상황실장으로 내정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IMF만 극복하면 역사에 남네. 그리고 남북관계 풀어가지고 그렇게 우리 국민이 숙원하는 노벨평화상도 받을 거야. 그때도 자네가 역할을 해줘. 자네 처음에 쓸 때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만류했는가 몰라. 검증이 확실히 됐느냐고. 좀 이상한 놈이라고 합니다. 사기꾼 아닐까요? 그러나 내가 다 뿌리치고 내가 사람 볼 줄 안다. 알아 쓴다고 했더니. 자네가 나 대통령 당선될 때 그 위기 위기마다 다 벗어나게 해주고, 이제 IMF 극복하는 대통령까지 자네가 만들어 주고 있는 거네."
"아닙니다. 대통령 당선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 유종근 천거

"자네가 다 일을 보고 있는데, 유박사(유종근)는 자기가 앞장서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사람들 만나고 인터뷰하고 난리법석이에요. 지가 공은 다 세우려는 것 같아."
"원래 좀 유지사님이 미국에서 오래 있어서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뭐 어쩐지 아는가. 나한테 재무장관을 달래요. 내가 막 뭐라고 했네. 그러자 '제가 뭐 어떻습니까. 제가 능력이 안됩니까. 나이가 안됩니까. 경력이 안됩니까. 그래요.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 자리는 자민련하고 얘기가 됐고 김종필 총재와 이야기가 끝난 자리네. 그런데 자네가 이렇게 우기면 되겠나'하고 끝내고 말았네."

"대통령님 그러나 유종근은 쓰셔야 합니다. 유종근을 옆에 두실 때 대통령님이 시장경제의 주창자고 추종자라는 것이 알려지게 됩니다. 그는 미국 대학교수고 미국통이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질서의 추종자 아닙니까?. IMF를 극복할 때까지만이라도 김태동이니 누구니 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유종근을 일단 쓰셔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수석도 안하겠다고 하고 뭔 자리 하나는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하나 내주었습니다.
"어드바이저가 어떨까요. 자문관. 어드바이저가 한국말로 무얼까요?"
"그래. 고문. 고문이네. 대통령 경제고문 어떤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 자리를 주십시오.""그러세. 그러면 내일(1월 3일) 바로 소로스 오자마자 휴가가 끝나니까 일산집에서 공식만찬을 베푸네. 그러니 소로스에게도 그걸 말해주세요. 다섯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인권과 자유민주주의 기수인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알겠습니다. 제가 조치하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김XX를 불렀습니다.
"이봐, 저 유박사 연결시켜봐"

김XX는 나와 같은 수행보좌역이었지만 DJ옆에 앉지도 못하고 쭈그리고 앉아 전화를 들었습니다. 벌써 나와는 엄청난 차이가 났었습니다. 대우에 차이가 나고 내용이 틀렸습니다.
"유박사 나요. 지난번 말은 새겨듣지 마소. 그런데 우리 최규선 보좌역이 큰일을 하고 있네. 내일 소로스가 들어옵니다. 내가 친서를 전달하라고 했더니 소로스를 데리고 들어와요. 시간이 없는데, 끌고 들어온 거요. 아무튼 내일 저녁 만찬을 일산에서 공식적으로 할 테니까 임창열 부총리도 오기로 했고, 김용환씨는 와야 되겠지? 그때 누구누구 부르면 쓰겠나"하면서 명단을 상의했습니다.

“그러면 자세한 소로스 일정은 우리 최박사한테 자네가 전화해서 알아보소. 그리고 나와 저녁에 만나기 전에 비대위(비상경제대책위원회) 멤버들 하고 신라호텔 찾아가서 김용환 위원장부터 최박사한테 전화하라고 해. 전부 시간을 비워서 소로스를 점심에 만나소.” 그러고는 김용환 위원장을 전화로 연결했습니다.

"아, 나에요. 우리 최규선이 알죠. 내 비서. 내 대통령 당선뿐만아니라 지금 내 지시받으면서 나와 같이 일하는데 대단한 일을 했어요. 조지 소로스가 바로 내일 들어옵니다. 소로스도 나의 옥중서신 영문 번역문을 다 읽고는 사실 김대중 대통령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 간다고 했대요."
한 시간 넘게 머물다 "전 준비 좀 하겠습니다. 물러가겠습니다"하며 일어서 돌아가려는데 대통령께서 불러서 "잠깐 자네 돈 좀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전 "괜찮습니다"고 했지만 "이사람아 자넨 내가 돈만 주려고 하면 안 받으려고 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하며 안받고 나왔습니다. 그 돈은 세뱃돈으로 준비해놓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오야붕이 주는 돈은 그냥 받는 거랍니다. 그걸 내가 안받고, 그렇게 순진무구했습니다. 컬쳐도 모르고 그랬던 겁니다.

저는 돌아와서 일에만 매달렸고, 소로스가 들어오자 일정대로 다 진행했고, 한국에 지사를 차리는 데도 나의 지인들을 사장·부사장으로 내세웠습니다. 그 사람들은 소로스 덕분에 몇백만달러씩 다 벌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돈 한푼 주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이얏트 건너편에 200만 달러 정도의 독채를 전세로 얻어가지고는 소로스 한국지사를 세웠습니다. 조지 소로스는 급기야 99년 1월에 서울증권을 인수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국가에 충성했는데도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의혹’뿐이었습니다.

◆ “아, 이 정권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최규선이가 몇백억을 벌었다더라, 최규선이가 어쨌다더라,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할 때만해도 난 대통령을 믿었습니다. 우리 대통령이 나를 아는데 저런 건 과감히 무찔러 주시고 혼내주시리라…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급기야 98년 여름부터 내사가 시작됐습니다. 그 당시 최XX 국회 문광위원장의 연락이 와 하얏트 호텔 로비 라운지에서 만났습니다.

"너 이건희 회장 자가용 비행기 타고 사우디 아라비아 갔다 왔지? 너 죽었다. 난리가 나부렀다."
"왜요"
"지금 재벌 때려잡겠다고 버르장머리 고친다는데, 니가 지금 이건희 회장 만나고 그 사람 비행기 타고 사우디아라비아 가서 난리법석을 떨어버리면 위에 있는 사람들은 뭐가 되겠냐. 니가 대통령이냐. 그리고 너 대우, 현대로부터 수백억원 받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벌었으면 빨리빨리 나눠라, 나눠."
"아휴, 형님 제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그 알 누구야. 그 알 좀 나눠 먹자."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내사해서 돈이 안 나오자 이제는 내가 북한 어린이 돕기 마이클잭슨 공연을 추진해 온 것을 알고 그걸로 구실을 찾았습니다. 거액의 리베이트 수수설에서 벗어나자 마이클잭슨 공연 불발로 나를 구속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던 사람이 바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던 이강래와 당시 국정원장 이종찬이었습니다. 당시 법무비서관이던 박주선씨를 통하지 않고(본래 사직동팀은 박주선씨 지휘선상에 있었습니다) 바로 김세옥 경찰청장을 불러 노란봉투를 주면서 “이 안에 내(이강래)가 국정원 기획실장으로 있으면서 가지고 있던 최규선 의혹에 대한 자료가 들어있는데 골인(구속을 의미)시키라. 의혹만 밝히는게 아니라 이 정권의 골칫덩어리에게 맛 좀 보여줘라.”고 했답니다.

이 말은 김청장이 최재승 의원을 스위스 그랜도 호텔에서 만났을 때도 했다고 했습니다. 나도 주변 몇 사람을 통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98년 6월에는 외자유치 리베이트설로 내사를 하더니만 7~8월부터는 마이클 잭슨 공연을 갖고 내사가 시작된 겁니다. 나로 인해 마이클 잭슨을 알게 된 수 많은 사람들이 경찰청 수사과로 불려 가서는 ‘너 손해본 것 있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들을 윽박 질러 마이클 잭슨 공연이 사기였다고 그렇게 엮어 넣어서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마이클잭슨이 북한 어린이를 위해 공연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양해각서(MOU)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이클은 친구인 나에게 연결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공연을 주최한 제일기획 사람을 만나보지도 못했습니다. 난 구상만 하고 기획만 했지, 내가 공연에 참여하거나 그런 적이 없거든요. 내가 직접 참여한 것은 96년 입니다. 마이클이 세계적인 공연 ‘히스토리 투어’ 연장선상에서 한국에 온 것입니다.

98년 9월 9일 영장이 발부된 것을 계기로 박주선씨가 제 사건을 알고 발끈했습니다. 자기에게 보고도 없이 시작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저를 없애기 위해 그랬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사람도 베테랑 검사인데, 그걸 몰랐겠습니까. 나는 그 때 박주선씨와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그 사람 대검 수사기획관으로 있다가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와가지고 막강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이 수사과장 최성규씨를 불러 누가 이걸 지시했냐고 묻고 이강래, 이종찬이 그랬다고 하자, “안된다. 구속영장 안된다. 보류하라”고 해서 검찰에서 영장이 기각이 돼 불구속으로 계속 조사를 받았던 것입니다.

급기야 99년 6월 25일 마이클이 잠실 경기장에서, 내가 MOU를 맺었던 바로 그 장소에서 북한 어린이 돕기 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무혐의를 받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어떻게 청와대 하명 수사에 대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할 수 있겠습니다. 상상을 해보십시오. 그것도 정권 초기에 말입니다. 그후로 저는 피해망상증에 걸렸습니다. 아 이정권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

◆ “미국에 6개월만 가 있어라”

98년 9월 10일날 바로 영장이 기각되고 나온 날 이재만 수행비서가 나를 평창동 청와대 경호원 아파트로 불렀습니다.
"미국에 6개월만 가 있어라. 대통령께서도 당신 구속을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게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이미 피해망상증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 비서는 “권노갑 고문도 나갔으니 미국에 가서 만나보고, 동병상련이 아니냐, 권고문 같은 사람도 외국에 나가지 않느냐”면서 “대통령께서는 ‘최규선이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외국좀 나가 있으라고 해라’는 말을 차안에서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99년 9월 추석 직전에 미국에 나갔습니다. 이 정권 탄생에 기여한 내가 가슴에 한을 안고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간 겁니다. 나중에 이 정권으로부터는 어떤 직위도 얻을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래 돈을 벌자, 그리고 정치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 일본에서 권노갑씨와 만나

그 후에 권 고문을 일본에서 만납니다. 권고문은 나를 반갑게 맞이해줬습니다. 왜냐면 내가 인수위원회에 있을 때 구속 상태에서 병 보석으로 강북삼성병원에서 입원해 있던 권고문에게 인사를 간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병실은 김대통령이 당선된 후 수시 출입이 가능했습니다. 당시 문비서가 병실을 지키고 있었고, 특별한 사람에 한해서 들여보내주었습니다.
"TV에서 봤네. 신문에서도 보고, 온통 자네 이야기 뿐이더구만. 대통령 잘 모시소. 그러면 난 자네 이뻐해주네"
병실에 와 있던 사람들 중 김XX 의원이 "형님, IMF네 뭐네 그런 걸 갖고 이제는 세계화 시대가 되서 최 보좌역 같은 사람이 앞장서서 훨훨 나는 세상이 왔어요. 똑똑하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이런 덕담을 해줬습니다.

일본 오쿠라 호텔에서 권고문을 만날 때도 문비서가 나왔습니다. 샤브샤브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권 고문은 “한국에 돌아가면 내가 자네의 보호막이 되 주겠네. 내 우산 속에 있으소. 그럼 자네는 안심이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 권고문이 누구인가. 이 사람 밑으로 들어가자. 이사 람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 살자. 죽기는 싫어. 그리고는 저는 달력만 봤습니다. 국민의 정부가 언제나 빨리 지나갈까. 그 일환으로 김홍걸에게 돈도 줬던 것입니다. 그거 빚진 돈도 갚아줬던 겁니다. 다른 이유 없습니다. 여러분은 의아할 겁니다. 아무리 의형제라 할지라도 아무리 친하다 해도 그 많은 돈을 줬을까. 저는 이런 명목으로 줬던 겁니다. 그를 이용해서, 배경으로 해서 돈 번 것 하나도 없습니다.

◆ 김홍걸씨에 협박 메시지

그도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홍걸이도 형들에게 치어가지고 한국에 나와 있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홍걸이 말을 듣고 이권을 뜯어내줄 어느 고위 공직자도 없었을 겁니다. 그들도 다 알고 있고, 홍걸이, 홍업이 눈치 보느라 홍걸이를 도와주겠습니까. 홍걸이도 형에 대한 불만을 많이 얘기했구요. 그리고 내가 홍걸이를 등에 엎고 배경으로 삼았다는 건 말이 안됩니다. 다음 이야기는 다시 남기겠습니다(그는 김홍걸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듯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남겼다)

“잘 들으세요. 이제 검찰의 소환이 임박해가는데요, 내가 이제까지 5년을 기다리면서 김박(김홍걸씨를 이렇게 불렀다)도 알다시피 정치적 재기, 그 하나만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고 모든걸 감내하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내가 홍걸씨는 끌어안고 어떻게해서든지 다 보호해줄테니까요, 그 대신 아버지한테 말씀하십시오. 나를 파렴치범으로 몰려고 한다거나, 이 최규선의 재기를 막는 어떤 방법이 시도가 된다면 나는 다 불어버립니다. 나는 죽을 각오가 돼 있어요. 이말 명심하십시오.

김박. 꼭 말씀하셔야 합니다. 나는 아들도 있고, 내 한 몸 죽어도 내 아들이 증언할 수 있도록 나는 모든 녹음을 남겨서 안전한 사람에게 맡겨놨어요, 나 죽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분명히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땅을 치고 후회하지 마세요, 나 지금 이성을 잃었습니다. 어떤 회유도 난 안받아들입니다. 난 내길을 갑니다. 그 대신 나는 김박이 안쓰럽고, 나도 불쌍한 놈이었고 김박도 거기서 소외되었던 사람 아닙니까. 우리가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고 위안이 되면서 왔는데, 홍일이 형이 또 서울에 들어옵니다. 어떤 장난을 칠지 몰라요, 만약에 이런 장난이 이루어지면 공개됩니다. 모든 게 공개될 겁니다. 그러니까 빨리, 이건 아버님 밖에 없습니다. 최규선이에 대해서 나중에 검찰에서 어떤 말이 나오고 변호사가 올 때에도 홍걸씨는 내가 보호해준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나를 파렴치범으로 몰지 말라고 해 주세요. 나의 재기를 막는 어떤 시도라도 만들 때에는 바로 끝나버립니다. 아시겠죠. 김박 명심하십시오. 빨리 지시해 주세요. 그리고 민정비서관 김현섭씨하고 계속 통화하고 있어요. 이 사람이 나에게 계속 전화를 합니다. 됐는지 안 됐는지를 민정비서관 김현섭씨를 통해서 나에게 연락이 오게 해 주세요. 오늘 아침에도 통화하고 거의 매일 통화합니다. 이분 참 현명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나는 이 사람하고만 통화를 할 테니까요, 김현섭씨에게 “됐다, 안됐다”는 메시지만 전달해 주세요.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