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渤海)사를 놓고 중국은 물론 러시아, 일본도 모두 자기 역사라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소홀히 하면 '발해'는 남의 나라 역사가 되어 버릴
지 모릅니다."

조선족 출신으로 평생 발해사 연구에 몰두해온 방학봉 (方學鳳·72) 전
연변대 역사학부 교수가 이달 초 한국을 찾았다. 다음달 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저서 '발해성곽'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이다.

한국 방문이 네번째인 방 교수는 사라진 역사로 치부돼온 발해사를 우리
역사 전면에 다시 등장시킨 선구자라는 학계의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45년 동안 수백권의 국내외 고전을 섭렵하는 정열적인 연구를 통해
실존 여부에 대한 논란을 빚어온 발해의 주요도시 위치와 경제·문화,
발해인들의 생활상 등을 밝혀낸 인물이다.

1930년 중국 연변 화룡(和龍)시에서 태어난 방 교수는 전형적인 조선족
화전민 출신. 연변대 역사학부에 입학한 지난 49년 가을 연변
돈화현(敦化縣)에서 발해 3대왕 문왕(文王)의 딸 정혜(貞惠)공주 무덤이
발견되면서부터 발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57년 연변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간 방 전교수는
10년 이상 당서(唐書)·삼국지(三國志),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의 고(古)
한문을 직접 읽어가며 발해 관련 자료를 발굴해냈다.

하지만 소수민족인 조선족의 발해 연구에는 시련이 적잖았다. 문화대혁명
때는 중국 정부에 의해 백두산 근처 농가로 쫓겨가는 하방(下放)을 당해
사실상 학계에서 축출을 당했다. 우사(牛舍)를 개조한 집에 살며 벌목과
돼지치기로 생활해야 했다.

78년에야 다시 연변대 교수로 복귀한 방 교수는 그동안 쌓아온 탄탄한
자료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논문들을 잇달아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발해의 독창적인 화폐 문화, 농사에 소를 이용한 사실 등이 그를
통해 1000년만에 햇빛을 봤다.

서울대 국사학과 송기호(宋基豪) 교수는 "조선족 출신으로 발해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포기했지만 방 교수만
유일하게 남았다"며 "그의 업적은 국내 발해 연구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