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낮 12시 경기도 용인군 용인공원 묘지. 한 무리의 문인들이 4월의
태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렬하게 내리꽂는 햇살 아래 마치
정물처럼 서 있다. 97년 서른 넷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설가
김소진(金昭晉·1963~1997)의 5주기다. 시인 안찬수 김철식, 소설가
성석제 오수연, 문학평론가 서경석 진정석 정홍수 신수정 손정수, 번역가
정영목 등 이십 여 명이 고개를 숙인다. 서울대 영문과 83학번이었던
고인의 학과 선후배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도시적 감수성의 개인주의로 무장한 신세대 문학의 유행 속에서도 특유의
아름다운 한국어로 공동체적 삶의 현장을 탐색했던 그의 소설은
평론가들에게서, 그리고 눈밝은 독자로부터 주목 받았고, 90년대
대표작의 앞 자리에 서 있었다. 소위 메이저출판사에서는 단 한 권도
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척 예외적인 일이었다. 더욱이 좀처럼
주례를 맡지 않는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의 축복 아래 치러진 소설가
함정임(咸貞任)과의 93년 결혼은 '문단의 경사'로 치러졌고, 이제
"좋은 작품만 쓰면 된다"고 의욕을 불태울 즈음, 그는 암으로
쓰러졌다. 또래 문인들은 홧술을 마시며 그의 쾌유를 빌었지만, 그는
끝내 97년 4월, 한국문학사 속으로 사라졌다. 잡채, 나물, 전, 떡, 과일
등을 바리바리 챙겨 이 날을 준비한 부인 함 씨는 "벌써 이제 그와 함께
산 날보다 혼자 있었던 시간이 더 많게 됐다"고 했다.
5주기를 맞아 그의 문우(文友)들은 '김소진 전집'을 낸다. 7월이면
'고아떤 뺑덕어멈' '장석조네 사람들' '자전거 도둑' 등 4권으로
묶여 나오는 그의 대표작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살아 생전 김소진의 작품집 대부분을 편집했던 문학평론가 정홍수씨는
"오늘은 죽은 자가 초청한 봄 날의 야유회"라고 호탕하게 얘기해
사람들을 웃겼지만, 자리를 끝내며 "소진아, 나 간다, 내년에 또
올게"라고 말 할 때 그의 눈에는 빈 자리가 가득했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 덩그렁하니 세워진 비석, 그 모서리 옆 면에는 고인이 이 땅에
남긴 유일한 혈육 태형(泰亨)이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 龍仁=魚秀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