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이 최규선(崔圭善)씨가 2억5000만원을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 의원을 통해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폭로를 할 때 "녹음테이프가 있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사람들에게 그렇게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여야
정치공방에선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비슷한 근거없는 폭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 의원은 윤 의원과 최씨가 돈을 주고받으면서 나눈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가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이 그 테이프를 직접 들었다고
했다. 설 의원 주장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으며, 이회창 후보와 윤
의원은 정치생명이 끊길 수 있는 상태에 몰렸다.
그 이후 설 의원은 "녹음테이프를 못 들었다"고 말을 바꾸더니 25일
기자회견에선 "녹음테이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받았느냐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애당초 "녹음테이프가 있다"고 말하는
바람에 이렇게 커진 사건인데, 녹음테이프가 중요하지 않다니 무슨
말인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기자회견에서 설 의원은 녹음테이프는 물론이고, 제보자, 증인 그 어느
것도 내세우지 못했다. 제보자가 테이프를 들었느냐는 질문에도 확답을
못했다.
그러나 이번 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다.
설 의원은 "책임질 일 있으면 지겠다"고 했지만, 책임질 자세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야당의 공세가 하루 아침에 눈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도 인정한 '경솔'에 대한 반성보다는, 뭔가
또다른 폭로거리를 찾아 반드시 상황을 뒤집고 말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
불과 얼마전 '이회창 전 총재가 빌라를 차명(借名)으로 소유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폭로도 아무런 근거를 대지 못했지만, 흐지부지
넘어가고 있다. 이런 '흐지부지'가 정치권 풍토를 더 망가뜨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