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월에 자녀를 결혼시키는 예비 시어머니 ·장모들이 난상토론을 마친 뒤 서울 삼청동 거리에서 포즈를 취했다.<a href=mailto:krchung@chosun.com>/정경렬기자 <


"오늘 많이 좀 배워야겠네. 옆에서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하니
헷갈리거든요." "그냥 남들 하는대로 하는 게 좋아요." "아니야,
소신껏 해야지." "무슨 소리? 요즘은 애들이 다 알아서 합니다."

바야흐로 결혼 시즌. 대한민국만큼 자식 결혼 놓고 어머니들이 속 끓이는
나라도 있을까.

5~6월 자녀 결혼 앞두고 한창 정신없을 주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인륜지대사를 앞둔 예비 시어머니와 예비 장모들이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짝을 만난 한 집 빼고는 자녀들이 모두 연애
결혼이고, 딸과 며느리들은 다 커리어 우먼이다. "결혼과 함께 자식은
완전 독립한다"고 입을 모은 어머니들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시어머니나 마냥 엎드려 있는 친정 엄마는 이제 없다"는 데도 동의한다.

그러나 어머니들 사이에도 세대차이는 있었다. "딸이 서른 넘자 '누가
제발 데려가 줬으면'하는 심정이었다"는 어머니와, "딸한테 꼭 결혼할
필요 없다고 했다"는 어머니가 자리를 함께 했다.

◆ 결혼 준비, 어떻게 하나

=서울 강남에 있는 문화회관에서 해요. 우리 쪽 청첩장은 350장 정도
찍었어요.

=애 아버지가 대출받고 아들 저금 보태서 5000만원짜리 15평 빌라를
전세로 마련했어요.

=22평짜리 전세는 사위가 부담했어요. 요즘은 애들이 다 알아서 해요.
혼수도 둘이 돌아다니면서 척척 사고요. 딸이 저금한 돈으로 혼수
장만하겠대요. 장롱에 처박아 두는 것 싫다며 반지도 커플링으로
간소하게 한대요. 대신 신혼여행 하루 더 가고요.

=번거로운 건 다 생략이에요. 함도 아들이 혼자 지고 간답니다.

=딸 결혼시키는 엄마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잘해주고 싶지요. 사돈댁이
다 필요없다고 하는데 진심인지 아닌지 몰라 좀 불안해요. 시어머니 한복
해드리고 '예단금' 보낼 겁니다. 요즘 시세가 500만원,
700만원이라면서요?

=저희도 신부쪽에서 500만원 보냈길래 3분의 1을 돌려 보냈어요.
나머지로는 제가 친척들 선물 샀어요.

=폐백은 양쪽집 다 할 거예요. 아들만 자식인가요.

◆ 같이 살고 싶다? 따로 살고 싶다?

=위로 두 아들은 결혼하고 바로 분가시켜서 사실 좀 섭섭했어요. 이번에
결혼하는 막내 아들 내외랑 한 일년 같이 살려고요. 정도 붙이고 집안
풍습도 가르쳐 주고 싶어요. 그래서 아들 결혼식 전에 40평 아파트로
집을 늘려가요. 애들 사생활이 중요하니까 집이 커야지요. 살림은 직장
다니는 며느리 안 시키고 내가 다 할 거예요. 아침 차려 놓고 먹고
나가든지 말든지, 또 언제 들어오든지 말든지 일절 간섭 안하고요.(예비
장모들은 이 대목에서 일제히 '그렇게 되겠어요?'라고 입을 모았다.)

=저도 애들하고 잠깐 같이 살아보곤 싶어요. 그런데 요즘 같이 사는 집들
별로 없던데요.

=옷을 맘대로 훌훌 벗을 수 있나…. 같이 살면 어른들이 더 불편해요.
6개월도 못 버티고 아들 내외 분가시킨 친구 있어요.

=우리 집 양반은 며느리 들어오면 자기는 아침 일찍부터 집 근처에 있는
가게로 나가서 하루종일 있다 올 거랍니다.

=애 생기면 내(시어머니)가 키워야지요. 둘째 아들 내외는 애 봐주는
처가집하고 한 식구처럼 살아요.

=난 솔직히 애 보기 싫어요. 나도 일 있고 바쁘니까요.

◆ 여우같은 며느리 vs 털털한 며느리

=한번은 다 같이 놀이공원 갔는데 며느리 될 애가 초밥을 너무 예쁘게
싸왔어요. 내가 싼 김밥이 창피할 정도로요. 내내 둘이 손 잡고 다녔는데
너무 좋았어요. 둘이 만나 냉면도 먹었는데 제 옆에 찰싹 붙어 앉아서
싹싹하게 굴고…. 기분 좋았어요.

=아이구, 그런 애들이 오래 안 가요. 오히려 변덕 있다구요. 나도 곰보단
여우가 좋지만 치고 받고 싸우더라도 털털한 며느리가 좋아요. 뒤끝
없고.

='○○야' 하고 막내 며느리 이름을 자연스럽게 불러요. 위로 두
며느리한테는 그렇게 못 했어요.

=사위될 사람 이름 부르긴 해요. 그런데 그렇게 굉장히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저는 사위 앞에서 말도 못 놓겠던데요.

◆ 요즘 애들 영악하다

=딸이 집에서는 뻣뻣한 장작이예요. 그런데 신랑될 사람한테 전화하는 걸
보면 살살 녹아요. 양가 상견례 때도 그쪽 어른들께 어찌나 싹싹하게
굴던지 웃음이 나대요.

=아들한테 집안 일 같이 하라고 신신 당부해요. 같이 돈 버는데 어떻게
여자 혼자 해요.

=친구가 어느날 딸네 집에 갔는데 사위가 와이셔츠 걷어 부치고
설거지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대요. 그런데 얼마 뒤 아들 집에 가서
똑같은 광경 보고는 눈에서 불이 났다나.

=여자가 혼수 적게 해가서 구박 받고 그랬다는 것은 다 옛날 이야기죠.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대요. 분수도 안되면서 바리바리 싸 가지고
가지 않아요. 능력 안 되면 싹 포기하죠. 자기가 가서 기죽을 혼처는
싫대요.

◆ 여자는 결혼 하면 남자집 귀신?

(‘맞다’ 4명, ‘아니다’ 1명)

=내내 옆에 끼고 있어도 걱정이겠지만 딸이 막상 결혼한다고 하니까 너무
섭섭해요. 할 수 있는 한 계속 해주고 싶은 것이 엄마 마음이죠. 젊은
내외끼리야 재미있게 산다지만, 시댁 손님이라도 오면 어쩌나
걱정이예요.

=가서 잘 살아야지요. 그래도 딸이 너무 불행하면 내가 나서서 데려
오겠어요. 왜 TV 드라마 보면 너무 이상한 시어머니 있잖아요.

=여자가 능력되면 혼자 살 수 있죠.

◆ 아, 손주가 보고 싶다

=며느리가 우리 집 지나쳐서 친정 식구네 가는 게 창 밖으로 보일 때가
있어요. 서운해도 별 얘기 안 해요. 나중에 손주한테 "너 이모네
갔었지" 하면 "와, 할머니 어떻게 알아" 해요. 그러면 "그냥 알아"
하지요.

=손자들 생각에 잠이 안 올 지경이에요.

=갱년기도 오고 만사 서글퍼지는 나이에 애들까지 손자 안 데리고 오면
섭섭하지요. 며느리가 좋아서 그런가 뭐, 애기들 보고 싶어 그러지요.

=우리는 지방, 애들은 서울 사니까 추석, 설날 이렇게 일년에 두번 봐요.
시어머니가 잘 해준다고 해도 며느리는 불편하겠지요, 뭐.

=내 딴에는 며느리에게 한 번도 큰 소리, 싫은 소리 안 했다고 자부해요.
애들 온다면 며칠 전부터 음식 해 놓고 기다려요. 아들네 가서 며느리
생일 상도 차려주기도 하고 김치도 담가주고요. 요즘은 힘들어서 못
하지만요.

=왜 그렇게 하세요? 애들이 고마워 하지도 않아요. 일단 결혼하면 애들
생활을 간섭하면 안돼요.

=요새는 시어머니가 반찬 주러 와서도 경비실에 그냥 맡기고 가는 게
예의랍니다.

=난 아예 택배로 부쳐요.

=어머니라고 아들 집에 무단출입할 수는 없죠. 아들 집에 잘 가지도
않지만 가서도 절대 살림은 맘대로 만지지 않아요.

◆ 섭섭해도 할 수 없다

=난 며느리가 애들 잘 키우면서 그저 큰 소리 안 내고 원만하게 살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해요.

=딸에게 "일단 너희 부부 일이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나서 시댁
챙겨라. 대신 친정에 한 번 하면 시댁에는 두번 해라" 그래요. 명절에
애들 오면 사위 눈치보기도 싫고 해서 오자마자 빨리 가라고 해요.

=오히려 친정 엄마가 더 대우 받아야 되는 것 아니에요? 어떻게 키운
딸인데요. 뉴스에서 험악한 사건 나면 벌벌 떨면서 말이죠.

=처가에 신경 똑같이 쓰라고 해서 사위에게 부담 줄 생각은 없어요. 다만
딸이 정당하게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나도 시집살이했어요. 세상이 바뀌어 시댁 잘못이 잘못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결혼시키면 일체 이래라 저래라 할 생각 없어요. 애들이 알아서 할
일이예요. 도와줄 생각도 없고 잔소리할 생각도 없어요.

=삼형제 다 장가 보내니까 섭섭하죠. 딸 시집보내는 것과 똑같애요.
옛날이야 결혼해도 부모 밑에서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자글거리며
살았지만 이제는 자기네들끼리 자기 집에서 사는 거지요. 요즘은
허전해서 그런지 부부가 교대로 서울 사는 삼형제한테 전화하는 일이
늘었어요. 시외 통화라 전화료가 한달 10만원이 넘는다니까요.

◇참석한 분들

▲유분남(53)=아들 셋 중 막내 결혼 준비 중. "아들한테 집안 일 아내와
나눠 하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둘이 버는데 살림도 둘이 해야지요."

▲이정임(60)=역시 아들 셋 중 막내가 곧 결혼. "아들 내외와 같이 살
예정인데 최대한 간섭 안 하라고 합니다. 애교 만점 막내 며느리가 너무
예뻐요."

▲엄순덕(50)=남매 중 큰딸 결혼 준비 중. "아직은 사위가 어렵고 사돈댁
어른들도 어려워요. 그래도 둘이 알아서 결혼 준비 착착 하는 애들 보면
기특합니다."

▲김순옥(61)=딸 넷 중 이번에 차녀가 결혼. "요즘 애들 오죽 바쁜가요.
양가 어른들 챙기기에 앞서 너희 일이 우선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두옥(51)=삼남매 중 큰 딸 결혼. "애들은 애들이고 나는 나 아닙니까.
그래도 결혼식날 한복 입어야 하니 15년 고수한 숏 커트 머리를 좀
길러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