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전화기 번호판을 못 돌려 아이들에게 전화를 대신 걸어
달라고 부탁하는 할머니들이 있었다. 또 동네 아주머니 가운데 한 분은
차만 타면 멀미가 나고 어지러워 어디를 가든 걸어서만 다녔다. 기술
혁신이 일어날 때마다 이렇게 신기술에 적응하지 못해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수는 꽤 많을 것이다. 그들은 패배자였기 때문에 아무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사회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인류는 끊임없이 새로운 발명을 통해 새로운 기계와 기술을 만들어 내고,
이 기술은 다시 새로운 생활 환경을 만들어 새로운 생활 방식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도태될
뿐이다.

20세기 끝 무렵에 불어 닥친 정보·통신 혁명은 또 다시 수많은 적응
실패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들에게 말 못할 고민에 빠져 하루하루를 지내거나, 아예 그
방면은 포기한 채 옛 생활 방식으로만 살아갈 각오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반면 정보시대에 적응한 사람들은 휴대용 컴퓨터와 이동전화로 무장한 채
자신이 원하는 장소로 휴가를 떠날 수 있다. 새 기술은 이들을
사무실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면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자유, 어디서든 접속이 가능한 편한 세계, 이것이 정보·통신 시대가
우리에게 약속하는 유토피아이다.

그러나 휴양지에서 계속 울려대는 이동전화를 받고 끊임없이 이메일을
읽고 쓰는 휴가가 정말 휴가인지는 의심스럽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우리는 시공을 초월하는 자유를 즐기게 되었지만 진정한 의미의 휴가도
영원히 잃을 것 같다.

( 유재원·한국외국어대 언어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