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순환도로에서 내려다본 해방촌과 한강 풍경.1961년 ‘오발탄 ’을 찍을 땐 판자집으로 가득했던 동네가 지금은 다세대 주택촌으로 바뀌었다.<br><a href=mailto:krchung@chosun.com>/정경렬기자 <

늦봄 햇살이 따갑다. 서울 남산 케이블카를 탄다. 빼곡이 들어찬
참나무가 뿜어내는 연두빛 물결은 화들짝 피었다 지고 마는 벚꽃 보다
아름답다.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명동과 남대문 시장, 그리고 시내.
서울이, 문득, 낯설다.

유현목 감독의 걸작 '오발탄'(1961년작)은 서울의 한 가운데, 남산
자락을 붙들고 앉은 해방촌과 명동이 주 무대다. 주인공 철호(김진규)가
치통으로 상징된 가족의 짐을 잔뜩 짊어지고 올라와 시가지를 바라보던
곳도 남산이다. 옛 남산 파출소 자리 어디쯤 될까. 왼쪽 끝엔 관악산을,
오른쪽 끝엔 마포를 아스라히 담아낸 카메라 앵글은 그 어디서도 찾지
못했던 철호의 탈출구를 표상하지만, 유현목 감독은 아주 빠르게 장면을
바꿔버린다. 고즈넉이 앉아 담배 한 대 피워낼 여유조차 철호에겐
사치였던 셈이다.

해방 직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에 월남민과 귀국 동포들이
몰려들면서 '해방촌'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대한주택공사 30년사'는
"도로 양쪽은 물론 산비탈, 공지, 천변, 남의 집 마당을 막론하고
손바닥만한 빈터가 있기만 하면 피난민들이 움막과 판잣집을 지어
살았다"고 기록한다. 영화 속 남산은 여기가 저 먼 선골 어디가 아닐까
싶게 한가한 야산을 보여준다. 멀리 비치는 북악과 관악, 그리고 마포,
한강의 이미지가 아니라면 서울이라고 생각키 어려울 정도다.

'오발탄' 후 41년 만의 서울은 전혀 다른 도시다. 지금 해방촌은
다세대 주택이 빼곡이 들어섰고, 해방촌 1세대들은 대부분 죽었거나 돈을
벌어서 그곳을 떠났다. '해방촌'이란 말은 이제 버스 노선도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

전쟁의 상처와 가난 속에 온 가족의 삶을 짊어졌던 철호(김진규)와 상이군인인 동생 영호(최무룡)등 구겨진 청춘이 흘러다니던 시절의 흔적은 명동성당 첨탑에만 남아있다.

달라진 것은 명동도 마찬가지다. 유감독은 생생한 서울 풍경을
흑백화면에 담아냈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 꿈결 같긴 하지만, 60년대
서울서 유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데자뷔(기시감)을 경험할 만한
다큐멘터리 분위기다. 여동생 명숙이 미군들에게 희롱당하던 조선 호텔,
동생 영호가 상이군인 친구들과 어울리던 충무로 거리, 그리고 급기야는
한탕 털러 갔던 상업은행 남대문 지점…. 그곳은 이제 전혀 다른 얼굴로
변해있다.

철호가 일하던 변리사(지금의 회계사) 사무실은 조선호텔 길 건너편에
있었고, 사무실 근처에 자주 나오는 금은방은 미도파 앞, 영화의 끝
부분에 나오는 치과병원은 지금의 밀리오레 자리 근처에 있었다. 영호가
턴 상업은행은 지금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영숙과 영호가 잡혀간
중부경찰서 역시 다른 곳들과 마찬가지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가 없다.
유일하게 그 앵글 그대로 비슷한 흔적이 남은 곳은 영호가 돈보따리 깔고
앉아 잠깐 점보는 척 하던 명동 뒷골목. 명동성당 종탑이 올려다 보이던
그곳은 지금의 유투존 건너편 먹자 골목 쯤이다.

전쟁 직후 명동은 문화예술인들의 본거지였다. 유현목 감독은 "최불암씨
어머니가 운영하던 대포집 '은성'이 언제든지 외상 술을 먹을 수있는
문인, 영화인들 본거지였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명동은 1960년대부터
금융과 패션의 중심지가 됐다. 마주보고 있는 YWCA와 명동성당은 70년대
이후 민주화 운동의 성지 역할도 했다. 패션 흐름이 강남으로 이동하면서
80년대 들어 잠시 시들해지기도 했지만, 최근 메사, 밀리오레 등의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고 멀티플렉스가 자리잡으면서 명동은 다시 젊음의
거리로 활기를 찾고 있다. 평일 한낮에도 젊은이들로 북적이고 주말이면
인파에 떼밀려 다녀야 할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인구 3천명 남짓한
작은 마을이지만 그 브랜드 파워는 여전히 강력한 것이다.

이빨을 뽑고 나온 철호는 무작정 택시에 오른다. 운전기사 옆에 탄
조수가 어디 가느냐고 묻자. 철호는 살을 에이는 통증을 악물고
얘기한다. 해방촌으로(어머니와 어린 딸이 있는), 중부경찰서로(은행
강도 혐의로 체포된 영호가 있는), 서울대학병원으로(둘째를 낳다가 죽은
아내가 있는). 평론가들이 한국영화 명장면 1위로 뽑은 이 영화의 라스트
시퀀스는 전쟁 직후 탈출구 없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한 남자의 삶을
강렬하게 웅변한다.

41년전 '오발탄'의 서울은 이제 없다. 공동 우물에서 물을 긷고 공동
변소를 써야했던 해방촌은 집집마다 현대식 부엌과 욕실을 갖춘 다세대
주택단지로 변했고, 납작 납작한 금은방과 가게들은 하늘을 찌르는
빌딩가로 다시 태어났다. 그 가난했던 시절의 '오발탄' 인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들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인 철호와 영호는. 그리고
우리는 누구일까. '조물주의 오발탄'들은 여전히 이 도시를 채우고
있을 터. ( 유승찬 영화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