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최규선(崔圭善)씨가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에게 주라고
한나라당 윤여준(尹汝雋) 의원에게 2억5000만원을 줬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이 스스로 장담했던 녹음테이프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설 의원은 22일 국회 의원회관에 출근하지 않았고, 폭로와 관련한 한
라디오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설 의원은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는 사람과 만나기로 했는데 안 나왔다. 설득
중이다. 미치겠다"고 곤혹스런 심경을 밝혔다.
이날 설 의원이 회관에 출근하지 않자 한때 주변에서는 "잠적한 게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 당의 한
관계자는 "몸이 아파 모처에서 쉬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설 의원의 행적에는 의문점이 없지 않다.
우선 그가 직접 테이프를 들어보지도 않고 내용을 폭로한 배경이다. 설
의원은 "지난주 초에 관련 제보를 받은 뒤 며칠 동안 확인작업을
거쳤다"고 말했다. 며칠 동안 확인작업을 거치는 과정에서 핵심 증거인
녹음테이프를 들어보지 않을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그리고 설 의원이 녹음테이프를 들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그렇게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면책특권이 보장되는 국회에서의 발언도 마다하고 당 내에서 폭로를
했다. 이에 따라 설 의원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 단순 제보자가 아닌
주요 인물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정보제공자가
국가기관이라고 보고 있다.
설 의원이 "설득 중"이라는 사람이 누군가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설 의원은 첫 폭로에서 "복수의 증인을 확보하고
있다. 성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궁지에 몰린 설
의원이 녹음테이프 공개에 앞서 복수의 증인이라도 내세울지 여부도
주목된다. 민주당 내에선 최규선씨의 측근이 녹음테이프를 갖고 있다는
얘기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녹음테이프를 들어봤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설 의원이 자꾸 뒤로 물러서면서 녹음테이프는 물론이고, 딱
떨어지는 증인도 없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설 의원이
"23일까지 녹음테이프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이 시한을 지키지
못하면 야당의 '날조 폭로'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게될 전망이다. 이
경우 설 의원은 야당과 여론으로부터 거센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설 의원을 검찰에 고발해 수사가 시작된 것도 변수다. 이
과정에서 녹음테이프의 존재 여부 등이 밝혀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