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달밤’ 등 국민적 애창 가요들을 남긴 가수 현인(83·본명 현동주)씨가 13일 오후 9시45분 당뇨합병증으로 서울중앙병원에서 별세했다.
현씨는 경성 제2고보(현 경복고)를 나와 일본 우에노음악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음대교수를 꿈꾸다가 현대사의 격랑에 휩쓸려 대중가수로 나섰던 한국가요 1세대. 굵고 남성적인 목소리를 심하게 떠는 특유의 ‘바이브레이션 창법’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중저음 바리톤인 성악 발성 대신 가늘고 높은 대중가요 창법을 하려니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떨었는데, 그게 오히려 신기했던 모양”이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훤칠한 키와 외모, 그리고 호방한 성품으로도 인기 높던 그는 1·4 후퇴 실향의 애환을 담은 ‘굳세어라 금순아’, 9·28 수복의 기쁨을 노래한 ‘럭키 서울’을 비롯, ‘고향만리’ ‘비내리는 고모령’ ‘인도의 향불’ ‘불국사의 밤’ 등 숱한 히트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1999년부터 이듬해까지 극장쇼를 재현한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에 출연해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지난해부터 당뇨로 투병해왔다.
그가 대중음악에 뛰어든 것은 1942년. 일본 유학을 마친 뒤 ‘성보악극단’에서 노래지도를 하다가 징용을 피해 황해·진방일·박단마 등과 ‘신태양극단’을 만들어 중국으로 건너갔다. 국내 데뷔는 중국에서 돌아온 1946년, 작곡가 박시춘의 권유로 취입을 준비하던 그는 명동 시공관의 영화 ‘자유부인’ 개봉 행사에서 ‘신라의 달밤’을 처음 불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관객들이 발을 구르며 놔주지 않아 내리 아홉 번을 부르고서야 무대를 내려왔다.
현씨의 빈소엔 최고령 원로가수 신카나리아(90)씨와 자니리, 안다성, 계수남씨 등 동료가수, 코미디언 구봉서, 배우 이덕화씨 등 각계 인사가 조문했다. 유족은 부인 김미정(72)씨와 아들 재헌씨 등 1남3녀. 장례는 한국연예협회장, 발인은 16일 오전9시. (02) 3010-2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