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 시내까진 리무진 버스로 1시간 반 걸린다.
평소 참으로 지루한 코스다. 헌데 오늘은 의외로 뒷 녀석들 애기가
재미있다. 일본 남자애랑 독일 남자애 둘이 영어로 대화하는데 피차 서툰
영어라 대화 내용이 다 귀에 들어온다. 독일 친구들 둘은 잡지사의
일러스트레이터. 일본에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 오는 출장이란다. 일본
친구는 봄 방학동안 미국 여행 갔다 오는 대학생. 날씨 이야기로 시작해
여자친구까지 잡다한 대화가 이지다가 어느 순간 이 친구들 결정적으로
목소리가 커졌다. 독일애가 일본 '코믹'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일본
애가 잠시 못 알아들었다. 그러자 독일애가 자기 가방에서 책을
꺼낸거다. "I like MANGA" 그가 꺼낸 책은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최강의 무사 스토리다. 독일어 번역
단행본 만화를 건네받는 일본애가 놀란다. 독일애 입에서 일본어인
만가(まんが, 만화)란 말이 나왔기 때문. 우리 매니아들에게 그냥
아니메(アニメ)라고 해도 애니메이션으로 알아듣듯 구미 매니아들에겐
재패니즈 코믹은 이미 'MANGA'라는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난 부러웠다. 야아, 우리 대중문화에도 'MANGA'나 '아니메'처럼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통하는 단어가 있었으면….
생각해 보면 우린 벌써부터 세계화, 국제화를 부르짖어 왔다. 그런데
대개는 제조업, 수출수입, 경제에 관한 것에만 한정되어 온 느낌이다.
실은 경제적 의미로도 대중문화만한 것이 잘 없는데 애초부터 국제적
기획을 세우는데 소극적이었다. 우리 대중문화 히트작 중에서도 애초에
외국인 공략까지 생각했으면 이런 정도의 작품은 10배, 20배 정도로
팔아먹을 수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우리 성인 만화 팬들이 가장 많이 보는 일본만화 '시마 부장'엔 요즘
이런 내용도 연재된다. 주인공인 '시마'가 서울에 와 역시 일본인인
서울 지사장을 만나는데 첫 접대하는 음식이 개고기다. 지사장이
흥분하며 개고기 예찬론과 옹호론을 펼친다. 음식은 그 나라 각자의
문화인데 한국인이 개고기 먹는다고 떠드는 프랑스인들이 웃긴다고
욕하는 내용. 이건 다분히 일본의 상업적인 한국 전략이다. 한국인들 꽤
많은 수가 이 만화 독자이니 이 정도 서비스는 하자는 거다. 작가도
편집자도 끊임없이 이런 식으로 국제화를 생각한다. 'MANGA'나
'아니메'란 단어가 세계 공용어가 된 것은 일본 만화의 재미도
재미지만 반 이상은 국제화에의 노력에 기인한다. 독일 친구들이 꺼냈던
'베르세르크'도 그 주인공 이름부터 배경, 작품 속 전쟁전략 전술까지
유럽인들 좋아하게 만들어 놓았다. '김치', '태권도' 같은 세계
공통어의 한국어 단어가 하나 탄생하는 그날이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
서는 날이다.
( 이규형 /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