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모를 92명의 세계 젊은이들에게 미국 뉴욕의 UN본부 빌딩이 지난
두달간 점령당했다. 물론 테러단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의 정체는 뭘까.
"저요? UN 직원인데요. 물론 인턴이긴 하지만." UN본부에서 세상
경험을 하려는 젊은이들은 세계 각지에서 몰렸다. 지난 15일 끝난 UN인턴
사원 봄 연수(2개월)에는 세계 41개국 92명의 대학원생들이 참여했다.
미국은 물론 캐나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브라질, 아시아의 한국 중국
일본, 유럽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그리스 폴란드 리투아니아(유럽
동북부, 발트해 연안의 공화국)… 다만 9·11 테러 이후 아랍권 학생들은
비자를 발급 받기가 쉽지 않고,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비용 부담 때문에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이들은 이곳에서 UN 직원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따라 했다. 일하는
부서도 본인 희망 따라 다양했다. 변호사 출신의 찰스 베이어(버몬트
법대· 캐나다)씨는 전공을 살려 법무국에서 국제법을 다뤘다. 그는
국제통상법과 미국 이민법을 더욱 연구해서 아시아 비즈니스가 미국에
진출하는 것을 돕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 전공인
호엔씨(뉴욕시립대학원·중국)는 IT부서에서 근무를 했다. "세계는
하나잖아요? 세계 심장부서 다른 나라 친구들과 일한다는 건 정말
흥분되는 일이잖아요?" 최정윤(서울대 국제대학원)씨는 군비축소국에서
이라크를 담당, 아침 저녁으로 이라크에 대한 세계 언론 동향을 보고하는
업무를 맡았다.
UN의 공식적인 근무 시간은 '9 투 5(9시부터 5시)'. 한시간 일찍 와서
한시간 일찍 퇴근하거나(8 to 4), 한시간 늦게 와도(10 to 6) 무방하다.
하지만 부서에 따라 업무시간이 천차만별이다. 박지영(연세대
국제대학원)씨는 오는 8월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거에서 열리는 '국제
정상 회담'을 준비하는 부서에 배치를 받은 탓에 거의 매일 야근이다.
이들에게 "유엔 인턴을 왜 응시했냐"고 물어보았더니 답은 한결같았다.
"국제기구 경험을 위해서요." 하지만 "무엇을 배우고 느꼈느냐"는
질문에는 그들만의 예리한 시각이 발동했는지 다양한 답이 나왔다. 정부
관료나 정치인을 지망한다는 맥시미리아노
마르쿠어스(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원·아르헨티나)씨는 "정치적 대화나
연구가 세계 문제를 푸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유연경(중앙대 국제대학원)씨는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국제기구에 가해지는 비판을 정확히 파악해 보고 싶어 응시했다"면서
"국제기구가 관료주의적이고, 근무자들은 명예심보다는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안정적인 직장 속에 안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리투아니아 출신인 루타 재뉴레비시어네(덴마크의 알보르그대학원)씨는
"경제사회위원회 고위급 회담을 준비하면서 인내심과 함께 절차의
단순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면서 "장래 국제 컨설팅사를 설립,
아프리카내 여성 기업인 육성, 인간 개발 등 업무를 하고 싶어졌다"고
장래 포부를 밝혔다.
젊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에게 일과 업무 못지않게 일과 후 시간도
중요하다. 스스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란다"면서 "30시간 정도는 돼야
일을 하면서 맨해튼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인턴들은 그룹을
만들어 문화 담당, 여행 담당, 바 담당, 식당 담당 코디네이터(조정자)를
정했다. 그들이 2개월 동안의 일과 후 및 주말 일정을 책임졌다. 연락
수단은 젊은 세대답게 이메일. 일정이 짜여지면 담당 코디네이터가
92명의 인턴들에게 이메일을 뿌린다.
매주 화요일은 바에 가는 날, 금요일은 영화나 뮤지컬을 즐기는 날,
주말은 관광으로 시간표를 꾸몄다. 수요일 저녁에는 유엔에서 저렴하게
마련한 살사 댄스 강의를 듣기도 했다.
1주일에 한개씩 주제를 정해 각국 음식을 맛보는 기회도 가졌다. 베트남
콜럼비아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라질 등의 요리를 하는 맨해튼의 유명
레스토랑을 두루 섭렵하고 다녔다. 다만 '고급스러우면서도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는 원칙은 정해져 있다. 한끼에 20달러가 넘어 가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바에 가는 날'(화요일)인 지난달 19일 저녁 7시 이들을 따라 뉴욕
맨해튼 50가(街·Street)와 2번가(Avenue) 사이에 위치한 선술집
'푸바(Fubar)'를 찾았다.
어둠이 깔리면서 젊은 남녀들이 한 두명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UN
인턴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자동적으로' 여기로 모였다. "안녕,
잘 지냈니"라는 인사말과 함께 하이 파이브(손바닥 마주 치기)를 하는
젊은이, 껴안고 가볍게 두 볼에 뽀뽀를 하는 이 등 반가움을 표시하는
방법도 각양각색. 이미 한쪽에서는 공짜 안주인 팝콘을 의자 위에 올려
놓고 둘러서서,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속에서 토론이 무르익고
있었다. 안쪽 구석에서는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당구에 열중하는
친구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UN 인턴들에게 맨해튼에서의 화요일 밤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UN 인턴들은 전문 지식 경험을 쌓고, 퓨전(fusion) 도시인 맨해튼도
동시에 즐기는 '원스톱 만족'을 만끽하고 각자 자신의 나라로 아쉬움
속에 돌아갔다.
( 뉴욕=김재호 특파원 jaeho@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