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만년 후로 날아간 시간여행자 하트겐 박사(위쪽)가 지하세계 몰록족에게 끌려들어가는 엘로이족을 구출하려 한다.H.G.웰스의 고전 과학소설 ‘타임머신 ’을 두번째 영화화한 이번 작품은 특수효과로 화려함을 강조했다.

한 장르의 예술 작품을 다른 장르로 변환하는 일은 늘 복잡하고 힘들다.

원작에 충실하려고 애써도, 변환된 작품엔 원작에 있는 무엇이 빠지게
마련이다. 때로는 원작에 없는 무엇이 더해질 수도 있다. 실은 그렇게
무엇을 보태는 것이 진정한 창조성이다. 그래서 한 장르의 작품을 다른
장르로 변환하는 일은 창조적 재능에겐 장애와 기회를 함께 내놓는다.

원작이 고전일 경우엔 이런 사정이 한층 두드러진다. 고전을 본질적으로
다른 작품으로 변환하는 것은 도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문제가 있지만,
인류의 넓어진 경험과 깊어진 지식으로 비추어 다시 해석하고 새롭게
포장하는 일은 작지 않은 뜻을 지닌다.

허버트 조지 웰스 (H. G. Wells)의 1895년작 '타임 머신'(The Time
Machine)은 과학 소설에서 새로운 경지를 연 고전으로, 지금도 널리
읽힌다. 하지만, '시간여행자'라고만 불리는 주인공이 80만년 후의
인류에 대한 관찰을 서술하는 소설을 2시간짜리 흥행용 영화로 만드는
것은 적잖이 어려운 작업일 터다. 게다가 이번에 그 일을 시도한 사이먼
웰스(Simon Wells) 감독은 또 하나의 고전과 씨름해야 했다. 과학소설
영화의 선구자 조지 팰(George Pal) 감독이 1960년에 벌써 영화로
만들었고, 그 영화는 고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팰은 좀 밋밋한 소설 '타임 머신'의 줄거리를 영화에 맞게 고쳤다.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시간여행자'는 본질적으로 관찰자였다. 80만년
후 지구에서 인류는 엘로이족과 몰록족 2종류로 분화되고, 후자가 전자를
잡아먹는 상황에 대한 꼼꼼한 관찰과 기록이 원작 소설의 주를 이룬다.
그러나 팰은 시간여행자를 엘로이족을 도와 몰록족을 물리치는 영웅으로
만들었다.

사이먼 웰스는 팰의 영화에 나온 이야기를 충실하게 따라서 그것을
재포장하는 길을 골랐다. 덕분에 그는 팰의 장점들과 함께 단점들도
함께 물려받았다. 장점부터 꼽자면 특수 효과다.팰은 특수 효과에 아주
큰 관심을 쏟았고 다른 부면에 대해선 비교적 소홀했다. 사이먼 웰스의
'타임 머신'도 특수 효과가 뛰어나다. 절벽에 붙은 엘로이족 마을도 잘
구상되고 아름답게 꾸며졌다.

반면에, 팰이 웰스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잃은 것들은 이번에도
되찾지 못했다. 웰스의 '타임 머신'은 당대 사회에 대한 통렬한
우화다. 인류 진화의 전 과정을 제시하고 인류의 앞날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상류층을 상징하는 엘로이족과
하류층을 상징하는 몰록족을 대비시켜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를
통렬하게 풍자했다. 팰의 영화에선 이런 점들이 빠졌고, 사이먼 웰스도
여전히 그점을 되살리지 못했다.

인류 진화에 관한 웰스의 비관적 전망을 현대의 생물학과 천문학
지식으로 다듬어내지 못한 것은 특히 아쉽다. 과학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함에 따라,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의 과학 이론과 기술에 바탕을 둔
과학소설은 차츰 낡아서 환상소설(fantasy)의 특질을 띠게 된다. 이를
영화화할 때, 낡은 과학 이론과 기술을 걷어내고 새것들을 대신 넣으면,
그 작품은 생기를 되찾지만, 허버트 조지 웰스의 증손자인 사이먼 웰스는
그런 높은 목표 대신 무난한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만족한 듯하다. 보다
야심찬 영화를 만들 기회가 그냥 지나가버린 것은 어쩔 수 없이
아쉽다.

( 복거일ㆍ작가ㆍ소설 ‘목성잠언집’ ‘비명을 찾아서’ 등 )

몰록족 우두머리 우버(왼쪽)와 타임머신에 탄 하트겐 박사가 겨루고 있다.

●80만년 뒤, 빛의 종족·지하괴물의 아수라장

사이먼 웰스의 '타임머신'(29일 개봉)은 원작의 인물을 구체적 이야기
구조 안으로 불러냈다. '시간여행자'로 불리던 주인공은 알렉산더
하트겐(가이 피어스)이라는 과학자로 설정됐고, 타임머신을 발명하게된
동기로 약혼녀 엠마의 죽음이 등장한다. 2030년 슈퍼컴퓨터 복스와
인터넷을 잠깐 등장시킨 뒤 인류의 멸망을 보여준 영화는 80만년 후 빛의
종족 엘로이와 지하괴물 몰록이 죽고 죽이는 세계로 하트겐을 데려간다.

타임머신 디자인이 독특하고, 슈퍼 컴퓨터 복스를 통해 수많은 고전 문학
작품(80만년 후까지 살아남은!)을 슬쩍 슬쩍 소개하는 등 재치있는
설정이 돋보이지만, 둘로 분화된 인류의 본질에 대한 성찰 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SF액션. 몰록의 움직임 등 여러 특수효과가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