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22일 오전 편집국으로 한 시인의 전화가 연거푸 걸려 왔다.
시골에 살고 있는 그는 목소리가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누라가 울고 있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보통 협박이나 쌍소리가
아녀. 온 사방에서 전화하고 인터넷 띄우고 편지오고. 난 정말 자유롭고
싶은디. 나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정말 자유롭고 싶다고…."
그는 정말 시골 아저씨를 닮았다. 구수한 사투리에 딱 어울리는 얼굴
모습이다. 잉, 잉 하고 말끝에 붙는 부드러운 억양 때문에 인간다운 정이
뚝뚝 듣듯 다감한 사람이다.
그는 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 남짓부터 32년 동안 벽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그리고 발 앞에 흐르는 강을 보면서 아이들의
천진한 고함에 묻혀 오로지 시만 알고 살았다. 그가 강을 소재로 쓴
시들은 얼마나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포근하게 적셨는지 모른다. 그의
시는 노래로도 많이 만들어졌으며, 그의 시를 소재로 한 소설가의 글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겉 모습은 아저씨이지만 마음은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 시인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에 반대한다는 소위 안티 운동을 하는 사람이 볼 때는
드디어 그도 가만 놔두고 볼 수 없는 위험 인물이 된 것 같았다. 안티
인사들은 그가 조선일보에 쓰는 글이 그들의 전열을 흐트러뜨린다고
생각한 듯 싶다. 그리고 당사자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친구들과
가족에게도 압박을 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시인의 목소리는 이어졌다.
"김기자 미안혀. 난 정말 이러고 싶지 않은디. 어쩔 수가 없어. 나도
견딜만큼 견뎠는디. 요즘처럼 괴로우면…. 나를 정말로 아끼는 친구들도
일단 조금은 피해보자고 하네. 지난 밤 한숨 못 잤어. 나보고 조선일보에
글을 쓰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라는 말도 있고."
이 시인의 전화를 받기 몇 십분 전 한 소설가도 전화를 했다. 그는 앞의
시인과 함께, 조선일보가 최근 사고(社告)를 통해 발표한 '아침논단'
칼럼의 필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황당한 느낌이 역력한 목소리였다.
"사람들이 나보고 훼절했다고 사이버 신문에 띄웠다는데…. 난 참
어이가 없소."
이 소설가는 오랫 동안 언론사 생활을 했고, 그의 작품들은 향토적
서정을 바탕으로 농촌의 실상을 그리면서 동시에 삶에 내재해 있는
한(恨)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역시
조선일보에 고정 기고자가 되려는 것을 소위 안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들은 생각보다 집요한 면이 있다. 작년에는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의 후보에 오른 한 여성소설가도 "내 이름을 빼달라"고
전화를 해온 적이 있다.
"나도 우리 문학이 이런 일에 휩쓸리는 것을 원치 않아요. 그러나
동시에 저들이 무차별적으로 욕해대는 글에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참아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제발 나를 조금 봐 주세요. 제발 그들이 나를
가만 내버려 두도록 절 좀 도와주세요. 조용히 글만 쓸 수 있도록요."
이 소설가는 특정 신문을 발벗고 옹호한다거나, 특정 신문에 반대하는
운동에 적극 참여하거나 하는 일들과는 거의 상관없는 인물이었다.
내면을 조응하고 깊숙이 내려가 그곳에 담긴 인간의 진실을 안간힘을
다해 길어 올려보려는 작품 세계를 갖고 있었다.
이 시인과 소설가들의 전화를 받는 심정은 참담했다. 시인 만큼 가슴이
괴로웠다. 이 글을 읽게 되면 안티 인사들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으니
성공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문학이 아직도 정치적 운동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럴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문학은 호흡이 가쁘다.
근거없는 도덕적 우월성으로 위장망을 친 지식인 테러가 문인들에게 생명
보다 소중할 글 쓸 자유를 제약하고 있던 날 오후 내내 편집국 창으로
뿌옇게 황사 바람이 몰아쳤다.
( 金侊日 문화부차장 kikim@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