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인천 부평구 부평동 다세대주택에서 일어난 가스폭발 사고로 부상했던 박경애씨와 딸 유혜진(오른쪽)양이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후 서로를 쳐다보고 있다.<a href=mailto:hschung@chosun.com>/정한식기자 <

“나길이 우유병이에요. 저기가 아이 방이에요. ”

지난 20일 오후 9시15분쯤 인천 부평의 붕괴된 다세대 주택 앞에서
망연자실해 있던 이재명(李載明·28·버스 운전기사)씨는 생후 108일된
딸 이나길 양의 우유병이 보이자 구조대원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어머니처럼 모셨던 할머니 이순복(89)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뒤
넋을 잃고 있을 때였다.

굴착기로 잔해를 거둬내던 구조대원들이 수작업으로 건물잔해를 하나 둘
걷어냈다. 1분 뒤 나길이의 머리가 잔해 사이로 보였다. 구조대원들이
빠른 손놀림으로 나길이를 구해냈다. 구조대원 김완기(金浣基·31)씨는
"아이가 침대와 장롱 사이에 끼여서 외상을 전혀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잠시 뒤 건넌방에 있던 나길이 엄마 이현아(25)씨도 싱크대와
냉장고 사이에 낀 채 발견돼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부인 이씨는
"펑하는 소리와 함께 집이 무너졌어요. 아이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아 나길이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요"라며 "병원에서 아이의
생존소식을 듣는 순간 꿈만 같았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살아난 아이도 있었다. 딸 유혜진(6)양과
함께 사고 현장을 지나던 박영희(여·41)씨는 갑자기 콘크리트 더미가
떨어져 내리면서 딸을 덮치려 하자 자신의 몸을 던져 혜진양을 감싸
안았다. 박씨는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딸의 목숨은 구할 수
있었다. 혜진양은 두개골이 일부 함몰됐지만 출혈이 없어 생명에는
이상이 없는 상태이다. 박씨는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아이를 감싸 안았다"며 "건물잔해가 우리를 덮었지만 아이를 꼭 껴안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건물 1층에 살던 부모와 자녀 등 일가족 4명을 잃은 이명식(45)씨는
사고 하루 뒤인 21일에도 말문을 열지 못했다. 아버지 이기봉(70)씨와
어머니 윤수복(64)씨, 딸 이민지(14)양, 아들 이해성(10)군 모두
건물더미에서 사체로 발견됐다. 공고를 졸업한 뒤 프레스 공장을
경영했던 이씨는 98년 IMF사태와 함께 부도를 냈고 이혼까지 해야 했다.
이씨는 포장마차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기 위해 시골에 있던 부모님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자신은 지난해부터 인천 주안에서 횟집을 하며 새
삶을 꿈꿨다. 하지만 사고는 이씨의 희망을 앗아갔다. 사고 현장에
도착한 이혼한 부인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