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어느 새벽, 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난생 처음 와 보는 곳이었지만 참으로 아늑한 느낌이 들었지요. 낮고
둥근 풍경, 그윽한 무채색의 분위기……. 대학 졸업반이었던 저는 그때
이곳 방송국에 입사 시험을 보려고 밤차를 타면서도 갈등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하지만 그 새벽의 느낌은 저를 기꺼이 이곳에 정착하게
만들었지요.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듯하면서도 어딘가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드는 이 평온하고 담박한 느낌 말입니다.
이곳, 진주에 지금 봄이 한창입니다. 남쪽 바다 삼천포 사천만을
통과해서 달려온 봄이 제 앞에서 숨을 고르고 있군요. 남강은 변함없이
호수처럼 잔잔하지만 그 수면 아래로 은밀히 봄을 맞는 꿈틀거림이
느껴집니다. 저 강물, 쉬이 볼 일이 아닙니다. 석류 속 같은 입술로
논개가 죽음을 입맞춘 바로 그 강물이니까요. 그녀의 숨결이 스며있는
촉석루에 올라서니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옵니다. 차례로 피어나는 봄꽃을
쓰다듬고 힘겹게 고개 내미는 새순을 어루만지며 감미롭게 다가오는
바람.
일견 배타적인 듯 보이는 진주 사람들 사이에 섞여들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배타성은 자존심 강한 이곳 사람들이 흔히 받는
오해일 뿐이었지요. 마이크를 들고 도시 구석구석과 근교를
돌아다니면서, 방송과 관련된 시청취자들의 반응을 접하면서, 저는 점차
억센 사투리에서 묻어나는 투박한 정과 운치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교육
도시답게 거리에 유난히 많은 학생들, 도심 외곽 진양호의 고즈넉한
풍경과 안개, 1시간 거리에 있는 지리산과 남해까지도 차츰 가족처럼
익숙해지더군요.
그리하여 촉석루에서 바라보는 남강은 이제 제게 앞마당처럼 환합니다.
저 맑은 물이 빚어내는 비단의 감촉과 빛깔도 눈앞에 환합니다. 그러나
진주산 비단처럼 아름다운 풍광에 마냥 눈멀어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지요. 평화로운 진주성에 깃든 임진왜란 진주 대첩의 기세가 저를
일깨우는 것이 느껴지니까요. 성 밖에 자리잡은 형평운동 기념탑 또한
그렇습니다. 진주는, 백정들의 인권 존중과 평등 대우를 주장한 우리
근대사상 최초의 인권 운동의 발원지인 것입니다.
그러한 저항의 정신을 수면 아래에 싣고 남강은 오늘도 묵묵히
흘러갑니다. 그 고요한 수면 위로는 예향의 모습이 일렁이고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강물 위에 부교를 띄워놓고 개천 예술제를 즐기는
시민들. 강물처럼 맑고 구성지게 흘러가던 남인수의 목소리. 저녁 공연이
시작될 때면 강물 위에 휘황하게 반사되는 경남 문화예술회관의 불빛.
문학을 다시 꿈꾸게 된 것은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장을 그만 두고 뒤늦게 소설 습작을 시작하게 된 것도,
신인 작가의 함정인 조급함의 덫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도, 저는 모두
이곳의 분위기에 빚지고 있습니다. 소설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난 7년
동안 수시로 운동화의 끈을 조여 매고 남강변을 달리면서 호흡을
가다듬곤 했지요. 제 소설들 속에 이 도시의 풍경이 묻어 있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일 터입니다.
이런저런 번잡한 일로 서울에 며칠 머물다 내려온 오늘, 모처럼 진주성을
거닐며 시간의 흐름을 느껴봅니다. 서울보다 느리게 흘러가는 이 도시의
시간을 저는 좋아합니다. 그러나 왠지 예전만큼 여유가 느껴지지는
않네요. 새로 뚫린 고속도로 덕분에 서울이 3시간 거리로 가까워진
탓일까요. 외람된 말이지만, 나이 들어가는 탓일까요. 아니면, 점점 더
짧아지는 계절 탓일까요. 새삼 심호흡을 하면서 삶의 속도를
조절해봅니다. 바람이, 봄이, 물결처럼 밀려듭니다. 이 따사로운
봄바람은 곧 당신에게도 도착할 것입니다.
( 高銀珠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