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북한 내에서 극도의 절망감과 박해에 대한 공포 속에서
수동적으로 우리의 운명을 기다리느니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겠다고
결심했다." 베이징의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탈북자들의 성명은
처절하다 못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다시 송환될 경우에 대비해
자살용 극약까지 소지했다는 그들의 "무릎꿇고 눈물로 호소한다"는
절규에 이르면 동족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탈북자들의 베이징 사투(死鬪)를 보며 떠오르는 단상(斷想)들이
있다. 첫째는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이고, 둘째는 독일의
전(前) 총리 헬무트 콜의 회고록이다. 나치 치하에서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는 1000여 명의 유태인을 구해냈다. 사실에 바탕한 영화는
가스처형실로 보내질 운명에 처한 유태인들을 안전지대로 피신시키는
라스트가 인상적이다. 쉰들러가 실천한 인간애(人間愛)는 진실로
숭고했다.
탈북자 25명의 엑소더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배후에도 '쉰들러'가
있었다.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씨다. 북한에 들어가 주민들의
열악한 생활상과 비인권적 행태를 목격한 그는 "내가 북한에 가서
실상을 다 봤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나섰다"고 했다.
그는 탈북자들의 안내자 역할뿐 아니라 대변인까지 자처해 북한정권의
실태를 전세계에 고발해왔다.
콜 총리의 회고록을 보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구축되자 서독정부는 잘츠기터에 '중앙조사처'를
설치했다. 동독 공산정권의 폭력과 인권침해를 조사해 행위자를
형사소추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이로 인해 동독 국경수비병들은
탈주자들을 정조준하지 않고 옆으로 총을 쏘았으며 정치범들을 고문에서
지켜주는 효과도 거뒀다는 것이다.
1989년 동독인들이 헝가리로 대규모 탈출하자 콜 총리는 헝가리의
네메트 총리와 전격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네메트는 "동독 난민들의
강제귀국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동독난민들을 위해 계속 국경을
개방해 놓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콜 총리가 그같은 호의에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자 네메트 총리는 "헝가리는 사람을 놓고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본의 시민단체 '북조선
난민구원기금'까지 나서 탈북자의 신변안전과 망명을 돕고 있는데
정부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