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가 1947년
발생했던 제주 4·3사건의 관련자 가운데 명예회복 대상자의 범위를
헌법재판소의 결정보다 광범위하게 규정하는 기준을 마련한 것은 당시
진압에 나섰던 군과 경찰의 정당성을 부정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 위원회의 활동 근거는 국회가 지난 2000년 1월 제정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에
따른 것이다. 총 20명인 4·3위원회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법무·국방·행정자치·보건복지·기획예산처장관과 법제처장,
제주도지사 등 당연직 정부위원 8명과 민간에서 위촉된 12명의 위원들로
구성돼 있다.

위원회는 처음부터 법상 '희생자'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이냐라는
문제에 부딪혔다. 사실 이 문제가 이 사안의 핵심이기도 했다. 4·3사건
당시 죽은 사람은 무장폭동을 일으킨 남로당 등 좌익세력, 진압 군경,
주민 등 다양하다. 이들 중 어디까지를 희생자 또는 명예회복 대상자로
볼 것이냐가 문제였다.

이런 가운데 예비역 장성 모임인 성우회와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헌변) 등은 "4·3특별법 자체가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작년 9월 "청구인들이
소송을 통해 직접 얻는 이익이 없으므로 소송이 적당하지 않다"며
각하했다. 그러나 헌재는 4·3특별법상의 '희생자' 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할 대상으로 ①수괴급 공산 무장병력지휘관 또는 중간 간부
②제주 4·3사건 발발의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 간부
③무장유격대와 협력하여 진압군경 및 동인들의 가족, 제헌선거 관여자
등을 살해한 자 ④경찰 등의 가옥과 경찰관서 등 공공시설에 대한 방화
등 폭동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자라고 명시해 제시했다.

헌재 결정 직후 정부 4·3위원회는 희생자 기준 결정을 위한 7명의
민간위원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민간위원 명단은
박재승(朴在承·서울시 변호사협회장) 김삼웅(金三雄·전 대한매일 주필)
서중석(徐仲錫·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한광덕(韓洸德·전 국방대학원장)
이황우(李璜雨·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박문철(朴文喆·제주서문성당
주임신부) 박창욱(朴昌彧·전 제주 4·3사건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장)
등이었다.

소위가 지난 2월까지 3차례 회의를 통해 마련한 기준은 헌재가 제시한
4가지 기준 중 두 번째와 비슷한 '4·3사건 발발에 직접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 간부'에다 '군경의 진압에 주도적·적극적으로
대항한 무장대의 수괴급' 두 가지뿐이었다. '공산 무장병력 중간
간부' '수괴급 아닌 군경 및 가족 살해범' '관공서 방화범' '폭동
적극 가담자' 등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한광덕·이황우 두
위원이 반대했으나 나머지 5명이 찬성했다. 이에 따라 이들도 제주
4·3사건의 '희생자'로서 '명예회복'이 돼야 하는 것이냐는 논란이
즉각 일었다.

결국 14일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주재로 열린 전체위원회에서도
소위안은 사실상 그대로 통과됐다. 정부위원(국무총리,
법무·국방·행정자치·보건복지·기획예산처 장관, 법제처장,
제주지사)들이 '수괴급'을 '수괴급 등'으로 고친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정부 관계자는 "수괴급 등이라고 했기 때문에 헌재가 제시한
기준을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논란은 확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