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공격이 발생한 지 이제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아직도 한창 계속되고 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연두 국정연설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 등 3국을
'악(惡)의 축'이라고 불러, 테러와의 전쟁 다음 단계는 이들 세 나라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암시를 함으로써 미 국민들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이후 전개된 상황과 분석들을 보면, 그의 언급은 시기상조였을 뿐만
아니라 오해를 낳았고, 생산적이지도 못했다.
우선, 미군 여러 명이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동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최근 전투('아나콘다 작전')는 아직도 우리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다음의 단계를 내다볼 여유가 없음을 냉혹하게
일깨워주었다. 그 전투에는 수백명의 알 카에다 전사들을 생포하거나
죽이기 위해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현지 병력 등 2000여명이 투입됐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다른 지역 상황이 안정된 것도 아니다.
카르자이가 이끄는 임시정부는 아직 수도 카불 이외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했던 북부동맹의 여러 군벌들은 이제 나라 각지를 장악하기 위해
자기들끼리도 싸우기 시작했고 카르자이와도 다투기 시작했다. 미국의
상당한 개입과 리더십이 없다면 아프가니스탄 상황은 애당초 탈레반
정권이 등장하게 만들었던 것과 같은 혼란 상태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둘째로 우리의 주된 관심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알 카에다 조직을
분쇄하는 것이며, 어떠한 악의 축 국가에 대해서든 대규모 작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먼저 이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알 카에다 조직 분쇄를 위해 필리핀과 그루지야에는 미군이 이미 파병돼
있고, 곧 예멘에도 파병될 것이다. 알 카에다 조직은 소말리아나 수단
같은 나라에도 있을 것이고, 만약 부시 행정부가 세계 어디에 있는
테러리스트들을 모두 분쇄하겠다는 목표를 완수하려 한다면 이들도
처리해야 한다.
셋째로 악의 축 국가들 가운데 가장 위협적인 이라크에 대해 공격을
가하기에 앞서, 중동에서의 폭력 사태는 반드시 진정시켜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매일같이 수십명씩 죽는 상황이
계속되는 한, 어떤 아랍 국가도 이라크 공격에 필요한 병참 지원을
제공하려들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또한 대규모 군사 작전을 펴기에 앞서 필요한 국제적 지원을
얻어야 한다. 부시가 국정연설에서 2차 대전 때 독일 일본 이탈리아
3국의 추축(樞軸)동맹처럼 이라크와 이란 북한이 마치 '축'을 형성하고
있는 듯이, 또 이들 3국이 9·11 테러 공격에 어떤 식으로든 책임이 있는
듯이 잘못 암시한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만약 앞으로 어느
시점에서 미국이 이라크의 현 정권을 몰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다른
나라들은 설령 사담 후세인의 제거 자체는 지지한다 하더라도 미국이
이라크 다음에는 곧바로 이란과 북한을 공격하러 갈까 봐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지지하기를 꺼릴 수도 있을 것이다.
9·11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국제 테러리스트들 및 그들을
지지하는 나라들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것은 옳았다. 이것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이길 수 있고 이겨야만 하는 전쟁이다. 그러나
(국정연설에서의 '악의 축' 발언으로) 투쟁의 목표를 이 세상의 '악을
발본색원하는 일'로 확대함으로써 부시는 자신의 원래 목적의 정당성을
스스로 잠식했다. 그런 싸움은 어떤 나라도 승리할 수 없다.
( Lawrence Korb / 미국 외교협의회(CFR) 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