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부터 시작된 공기업 노조 파업이 과거 노사분규의 일반적
흐름과는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애써 이룬 합의를 노조가
부결시키고, 합의서에 서명한 노조 집행부는 퇴진하는가 하면 재(再)파업
움직임마저 있다. 혹자는 이 현상을 최근 장기화되고 있는 "발전노조
파업의 효과(effect)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곳곳에서 연쇄적으로 터지는 올 공기업 노조 파업을 일단 정리해 보자.
서울지하철 노조는 지난 2월 3일 파업 돌입 직전 노사 합의를 이뤘다.
그러나 임금·단체 협약 합의안은 같은 달 22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그 결과 배일도(裵一道) 위원장은 위원장직에서 물러나
이대입구역 역무원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됐다.
2월 25일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와 가스노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철도노조는 파업 사흘 만에 노사 합의를 이뤘으나 이후
"민영화 법안 추진시 총파업 돌입"이라는 자체 결정이 내려져 불씨는
살아있는 셈이다. 가스노조도 뒤숭숭하기는 마찬가지다. 마치
"발전노조만큼 왜 버티지 못했느냐"는 자괴감에 사로잡힌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 와중에 한국노총 소속이었던 가스노조가 돌연 민주노총행(行)을
선언하고, 철도노조까지 뒤따를 기미를 보이고 있다. 사태는 엉뚱하게
한국노총과 민노총 간 세력경쟁 상황이 되고 있다. 다급해진 한국노총은
"파업에 참가한 철도노조원을 징계할 경우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하겠다"는 강수(强手)로 응답하고 있다.
결국 일련의 공기업 노조 파업으로 인해 강경 투쟁노선의 민주노총이
세(勢)를 얻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한국노총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향후 파업을 더 과격하고 집요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공기업 노조 파업의 근본 동인(動因)이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찬반론의 근거는 무엇인가.
노조의 논리는 "알토란 같은 국민 재산을 재벌과 해외자본에 헐값으로
나눠주는 것으로 역사에 죄악으로 기록될 것"(박석운 노동인권회관
소장)이란 것이다.
노동계의 논리는 애국(愛國)에 관해 세계에서 1, 2등을 다투는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에 호소하기에 충분하다. 일견 1980년대 운동권 인사들이
즐겨 사용했던 '매판(買辦)세력'의 이미지가 다시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반면 경제전문가들은 "민영화야말로 1970년대 말 이래 세계 각국 정부가
추진해 온 작고 효율적인 정부 만들기의 선결조건이며 기업경쟁력,
대외신인도 제고에 필수적"(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재계는 지금 침묵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공기업 노조 파업이
겉으로는 국가를 앞세우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에게 가해질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해 국민을 볼모로 잡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자명하다. 민영화 정책의 허실(虛實)을, 정부는 노조가
주장하는 TV토론을 받아들여서라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줄곧
정부 관계자들은 명확한 설명없이 "이미 합의된 내용에 대해 재론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사태를 진화하는 데
실패하거나 지나치게 시간을 끄는 바람에 노동계 주장처럼
'전력(電力)대란'이라도 나는 날이면, 민영화 정책은 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노조가 제기하는 이슈가 노동·임금 조건 개선 등 본연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폐지에 있다면 정부는 어정쩡한 입장에서 벗어나
정공법으로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 노조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마다 이슈로 들고 나오는 사태가 관행으로 정착될지도
모른다.
( 문갑식/ 사회부차장대우 gsmoo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