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에 사는 오규원(吳圭原·61)
시인을 만났다. 마침 문학과지성사에서 '우리문학깊이읽기' 시리즈의
일환으로 '오규원 깊이읽기'와 시전집 2권 등 욕심나는 책 세 권이
동시 출간됐다. 의사가 그에게 '절대 청정공기'와 요양을 처방한지 만
11년째다. 그때부터 강원도 인제, 그리고 영월군 수주면
무릉리(武陵里)를 거쳐 지난 96년 초여름부터 "해 지는 땅이 넉넉한
마을"이라는 서후리(西厚里)에 터를 잡았다. 악수에 여전한 강단이
느껴졌고 목소리도 쾌활했다. '현대 시사를 통해 시의 언어와 구조에
대한 가장 첨예한 탐구와 자의식을 보여온 시인'은 "왜 점심을 여기
와서 먹지 않고 중간에 떼우고 왔느냐"는 타박(?)의 말로 입을 열었다.
―‘그들’과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주2회 서울예대로 출강하며 젊은이와 호흡한다. 나는 괴리돼 살고
있지 않다."
―'인간이 만든 구원·해탈·진리·사상 같은 모든 관념의 허구를
벗어버린다', 그리고 '세계의 실체인 두두물물(頭頭物物)의 말을
'날(生)이미지' 그대로 옮긴다'는 당신의 시론(詩論)은 시를 공부하는
젊은이에게 필수과목처럼 돼 있다. 당신에게 시란 무엇인가.
“나는 시를 세계 인식의 한 형태로 생각한다.”
―구조가 없으면 예술도 아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보들레르의 산문시 이후 말라르메는 음악으로, 랭보는
견자(見者)시론으로 대응했다. 시에 양식이 없어졌으니 이제 양식은 개개
시인이 창출할 수 밖에 없다. 나머지는 뭐냐. 시가 아니다, 시 비슷한
것이지. 그래서 숨겨진 구조가 중요해진다."
―날이미지론과 한국 지식인 사회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선비 중심사회에 대한 반발이 날이미지론이다. 이념을 창출하는
관념세계로부터 단절되고 싶다."
―지식인에게 타락이란?
“젊을 때 하던 얘기가 현실에 적응하면서 점점 바뀌는 것이다.”
―지식인에겐 정당한 변모도 있지 않은가?
“충분이 발언해야 한다. 그 과정만 거쳐준다면 관계없다.”
―이청준은 당신의 시에 대해 '우리의 버거운 삶을 시로써 살아
넘으려는 자의 도저한 안간힘과 가열스러운 궁구의 몸살기 때문에 시어가
엄격하고 가파르다'고 말했다. '시의 숙명, 시형(詩刑)에 처해졌다'는
말도 했다. 동의하는가?
"수사법은 다르지만 의식은 동일하다. 나는 주류 문법, 전통적 시작법에
벗어나 있다. '지식인 시인' 보다 '쟁이 시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음악을 듣는가?
"명상 음악 외에는 잘 틀어 놓지 않는다. 주변이 주는 조용함, 바람
불고 나무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가 전부다. 나는 가능한 문화 충격에서
나를 방어한다.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보통 인간이 누리는 산소의 20%만
갖고 산다는 것을."(오규원은 1991년 만성폐쇄성폐질환이란 진단을 받은
바 있다.)
―그 상황이 당신에게 자연과 사물에 찬찬히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는 축복의 의미도 있지 않을까?
"그럼, 있다. 나는 삶에 대해 잔가지를 쳐버렸다. 좋은 것을 향유하고픈
욕망까지도 쳐냈다."
―'아무 것도 아닌 채로 그냥 그득할 수는 없을까'라는 경지에 이르는
것인가?
"그것은 내 삶을 말한 것이고…. 내 시에서조차 '아무 것도 시 속에
말한 것도 없는데 다 말한 것이 된다'면? "
―엄청난 일이 아닌가?
"그렇다. 엄청난 일이다. 내가 지금 그런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계획을 조금 얘기해달라.
"오늘 분위기 좋아지면 부탁하고 싶었다. 내가 아무래도 정년까지 못 갈
것 같다. 그때 김기자가 나에게 고별사를 한마디쯤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 창작 교육을 했던 사람으로서 무엇을 했는지 한번쯤 반성해보는
기회로…."
그는 2시간 가까이 열정적으로 말했다. 탁자 위 녹음기는 질문자 쪽에
가까이 놓여 있었는데도, 나중에 녹취를 풀어보니 그의 목소리가 훨씬
힘있게 담겨 있었다. '콜'이라 불리는 아주 잘 생긴 콜리종 개가 함께
살고 있었다.
( 西厚里(경기도양평군서종면)=金侊日기자kikim@chosun.com )
◇오규원씨 약력
▲1941년 경남 밀양군 삼랑진읍 용전리 출생 ▲부산사범학교, 동아대
법학과 졸업 ▲1968년 '현대문학'데뷰 ▲1971년 태평양홍보실에서
사보 '향장(香粧)'편집제작 ▲1979년 출판사 문장사 대표 ▲1981년~현재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시집 14권, 시론집 3권, 산문집, 수필집 등.
▲현대문학상·연암문학상·이산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