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아버지는 마이크로칩 사원증으로 출근체크를 하고 대학생
아들은 전자학생증으로 학교에 접속해 수업에 출석한다.'
'최근 우리는 속초 앞바다에 있는 해저주택 수하(水下) 13층으로 이사를
했다. 서울까지는 초고속열차로 37분 걸린다.'
상상력이 가장 왕성한 미래세대 대학생들이 그린 2020년 한국사회의 한
단면이다.
고려대 행정학과 염재호(廉載鎬ㆍ47)교수가 2001년 2학기때 개설한
'미래사회와 조직'을 수강한 학생들이 '2020년과 나'를 주제로
제출한 기말리포트에 나오는 내용의 일부다. 100여명의 수강생 중
A학점을 받은 20여개의 리포트를 분석한 결과 대학생들은 정보화의
대세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비정형화된 직업관이다. 그들은 로봇설계가,
인터페이스 디자이너, (교수가 사라지고 학생들의 학습을
지원하는)서포터, (저널리스트 대신 등장한)저널리티커, (사람들 간
소통단절로 큰 인기를 끄는)이벤트 매니저, 음악치료사 등을 꿈꾸고
있다. 게다가 동시에 2-3가지 직업을 갖는 외에도 주4일 근무제로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을 병행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어떤 학생의 직업은
공무원, 그러나 틈나는 대로 수화통역을 통해 사회봉사를 하겠다고 쓰고
있고, 또 한 학생은 공무원을 하면서 돈을 더 벌기 위해
증권자료분석가를 겸하고 있는 '2020년 자기' 모습을 그렸다. 그때면
부정부패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20년 단위로 직업을 바꿔 보겠다는 의견도 많았다. 수명이 100세 가까이
되는 데다가 주4일제로 주말대학이 활성화돼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전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들이 예상하는 사회변화도 흥미롭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예배를 보는
온라인 교회 일반화, 4-5개국어 통역이 가능한 휴대용 통역기의 보편화,
충돌방지 자동차 등장으로 인한 교통사고 사망자 절대감소, 소유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서 리스산업 번창, 본인은 인공심장, 어머니는 인공귀,
할머니는 인공신장을 다는 식의 생명공학 발전 등이 그것이다.
우리의 미래세대는 2-3가지 직업 이외에 시민단체 활동을 한 두개씩
병행하고 싶어했다. 그 때가 되면 활성화될 인공장기와 관련해
'장기교환 반대 시민모임'에서 활동하고 싶은 학생도 있었고
공무원이면서 반부패 시민운동 참여를 꿈꾸는 학생도 있었다. 리포트
제출자의 절반 가량이 환경단체, 국제인권단체 등에서 봉사활동을
고려하고 있다.
이들은 2020년을 맞이하는데 있어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오히려 바로
윗세대 30대와 40대를 걱정하고 있다. "386세대란 사람들이 몇년후면
닥칠 글로벌사회에 대비했더라면 지금처럼 사회의 낙오자들이 되지는
않았을텐데…"
정보화 마인드로 무장한 디지털계급이 지배하는 사회의 등장을 예상하는
이야기도 있었고 성ㆍ학벌ㆍ지역같은 기존의 차별은 대부분 사라지겠지만
'(정보사냥에서) 빠른 자와 느린 자'의 구별이 새로운 갈등을 일으킬
것으로 보는 주장도 있었다.
20여개 리포트 중에서 통일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2개뿐이었고 그 중
하나는 연방구성후 부유한 남주(南州)와 궁핍한 북주(北州)간의 갈등을
우려하고 있다.
염재호 교수는 "학생들의 이같은 의견들은 실현여부를 떠나 2020년
주역들이 어떤 방향으로 자신들 미래를 상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