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측근인 이수동(李守東)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자신이 현 정부 인사(人事)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특검팀에서 한 진술은 충격적이다. 더욱이 자신의 인사 청탁이 「상당 부분 그대로 됐다」는 진술은 현 정부의 일부 인사가 공조직이 아닌 사조직을 통해 이뤄졌음을 자인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지난 2월 논란을 빚었던 검찰 인사와 관련, 이씨는 서울지검장직에서 낙마한 한 검찰간부이름을 거명하며 “안됐다. 내가 좀 뛰었으면 됐을 텐데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다”고 진술한 사실은 그가 대통령의 측근이란 점을 이용, 막강한 ‘인사파워’를 발휘해왔음을 방증해주고 있다.
이수동씨는 그간 검·경(檢·警), 군·관(軍·官), 정부산하기관 등 전방위로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최근 이수동씨의 자택에 대한 차정일(車正一) 특검팀의 압수수색에서도 이수용(李秀勇·현 석유공사사장) 전 해군참모총장의 인사 청탁 관련 문건이 발견됐다. 민주당의 한 대선주자는 “이수동씨가 경기도 고양 자신의 집에서 동교동계 인사 5~6명과 1주일에 한두 차례 만나 인사문제를 얘기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검찰 고위간부는 “정권 초부터 아태재단에 있는 70대 노인이 검사장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이수동씨더라”고 했다. 검찰 내에서는 이수동씨에게 줄을 댄 전·현직 검찰 고위간부 4~5명의 이름까지 떠돌고 있으며, 작년 11월 대검의 이용호 게이트 수사상황을 이수동씨에게 흘려준 것으로 의심받는 현직 고검장급 간부도 그 중 한 명이다.
이용호씨와 함께 이수동씨에게 5000만원을 전달하고, 이수동씨를 숱하게 접촉했던 도승희(都勝喜) 전 인터피온 사외이사는 “한 전직 검찰간부는 이수동씨의 말을 법(法)으로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는 또 “이수동씨는 신승남(愼承男) 전 검찰총장에 대해서도 그가 대검차장과 검찰총장으로 승진할 때마다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도씨는 “적지 않은 외청장(外廳長) 인사에도 이수동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고, 안정남(安正男) 전 국세청장의 국세청장 내정 사실을 미리 이수동씨로부터 전해 들었다고도 전했다. 도씨는 이 말을 듣고 안 전 청장을 찾아가 국세청장 발탁예정 사실을 전해주었더니 안씨는 “그렇게만 된다면 (국세청장) 판공비를 털어 한턱 내겠다”며 기뻐했다는 것이다.
이수동씨의 입김은 경찰과 문화계쪽에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도씨는 “전·현직 경찰 고위간부 2명은 이수동씨가 밀었기 때문에 기용됐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물론 로비스트인 도씨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특검팀의 압수물 중엔 이수용 전 해군참모총장 외에 KBS교향악단 관계자의 인사 관련 서류와 98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임창열(林昌烈) 경기지사 후보캠프에 있었던 한 인사의 이력서 등도 포함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