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프로젝트2020 ’기획위원들은 ‘소득 3만달러 시대 ’를 열기 위해 우리가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은 ‘고통 없이 도약 없다 ’는 평범한 진리라고 입을 모았다.<a href=mailto:krchung@chosun.com>/정경렬기자 <

2020년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공동체적 자신감에 이어 '고통 없이 혁신 없다(no pain, no gain)'는
고통을 감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코리아 프로젝트
2020 기획위원들은 "소득 1만달러 시대에서 2만달러, 3만달러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되찾아야 할 것은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원들은 또
"97년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지난 3∼4년 동안 구조조정을 해 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면서 "게다가 이제는 위기 극복이라는 단기적
과제가 아니라 보다 나은 장기적 미래를 위한 투자와 그로 인한 고통을
스스로 감수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자기혁신 없이 미래는 없다'를
주제로 한 이번 토론에는 서울대 이창용(李昌鏞·경제학) 교수, 맥킨지
최정규(崔晸圭) 파트너, 연세대 모종린(牟鍾璘·국제학) 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이혜훈(李惠薰·경제학) 박사, 휴맥스
변대규(卞大圭) 대표, 연세대 김호기(金晧起·사회학) 교수,
생명공학연구원 박홍석(朴洪石) 박사 등 기획위원 7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지난 3일 조선일보 회의실에서 3시간여 동안 토론을 했다.

▲최정규 ='자기혁신 없이 미래는 없다'는 '공짜는 없다'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또 자기혁신은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화두(話頭)였던
구조조정과 같은 말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자기혁신 또는
구조조정은 우리 사회에서 공짜를 잘라내는 작업이다. 이 경우 고통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경제적 성장은 물론 정치·문화 등 사회 각 분야가
골고루 발전함으로써 3만달러 선진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이혜훈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짜는 없다(no free lunch)'를 실감나게
보여준 것이 IMF 외환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이전 2%대에
불과했던 실업률이 외환위기 직후 8.6%까지 올랐을 뿐 아니라 실업자도
40여만명에서 180만명에 달했다. 온 국민이 공짜의 대가(代價)를 톡톡히
치렀고, 지금도 그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공적자금이 150조원 이상이
투입된 상황이다. 이 중 일부는 회수가 되겠지만 절반 이상은 회수가 안
된다고 보면 그만큼은 국민의 세금으로, 그것도 우리의 후세대가
짊어져야 한다. 그때그때 문제점을 도려내지 않으면 결국에는 그 고통이
후세대까지 간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창용 =아르헨티나처럼 수십년 전의 잘못과 흥청망청이 지금 세대의
고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라도 있다. 1920년대 아르헨티나는 냉동선의
개발에 힘입어 유럽에 농축산물을 대거 수출하는 세계 5대 부국이었다.
하지만 30년대 세계적 대공황으로 각국의 수입장벽이 높아지면서
농축산물 가격이 떨어지자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급속히 침체되었다. 이
같은 외부충격이 왔을 때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허리를 졸라매면서
소득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의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정부는 구조조정을 통해 소득을 줄이기보다는 복지를 늘림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려 했다. 이후 상당 기간은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 지금까지 위기가 반복되고 있다.

▲김호기 =반면 혁신에 성공한 나라로는 핀란드·아일랜드·뉴질랜드를 들
수 있다. 이들 나라는 사회 전반에 걸친 장기간의 구조조정을 통해
일류국가로 다시 태어났다. 구조조정 과정에서는 대부분 경기침체와
실업증가라는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에는 성공해 온 국민이 그 성과를
누리고 있다. 영국과 미국도 80년대 10여년간의 혁신을 통해 90년대 이후
10년 이상 호황을 누린 것이다.

▲최정규 =기업 레벨에서도 성공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 경제가
전체적으로는 어렵다지만 닛산·마쓰다·도레이와 같은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성공해 불황 속에서도 잘 나가고 있다. 우리의 경우
태평양·신한생명·삼성전자 등을 들 수 있다.

▲이창용 =양적 성장만으로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한 개별적인 사건으로는
성수대교 붕괴를 들 수 있다. 튼튼한 다리 1개만 만들었으면 인도처럼 못
살았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성수대교를 10개 만들면서 지금까지 앞만
보고 급속성장을 해 왔다. 그러나 성수대교가 무너지면서 교량건설에
근본적인 개혁이 일어났고, 외환위기가 나고서야 구조조정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이번에는 그런 사고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미리
혁신해야 할 부분이나 문제를 찾아내 보자는 것이다.

▲모종린 =혁신은 곧 버릴 것은 버리고, 가지고 갈 것은 가지고 가고, 새로
만들 것은 새로 만들고, 되찾을 것은 새로 되찾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에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지도자에 관한 것이다. 지도자는
무엇보다 국민의 지지가 공짜로 일시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도자는 모든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선순위에 대한 결단이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이 있게 되면 여기에 끼지
못하는 계층이나 지역 등의 불만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도약이
가능하려면 선택과 집중밖에는 없고 그래서 리더십이 필요하다.

▲박홍석 =상식과 원칙을 가지고 선택하고 집중하면 된다. 자기혁신은 결국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을 한다면서 정부나 일부 계층만 앞서 나가면
안 된다. 소외받는 계층에 대해서는 정부는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 적극적
관심과 실질적 지원이 있어야 함께 어울려 가는 혁신의 동력을 만들 수
있다.

▲변대규 =정부나 지도자가 확실히 선택과 집중의 원칙을 지켜야 할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정부가 기술개발자금을 지원할 때 나눠먹기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과 회사를 키우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교수들이나 연구소의 연구프로젝트 지원도 여기저기
공짜처럼 나눠주다 보니 제대로 된 연구나 결과가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공평하게 나눠주면 전반적인
불만은 줄일 수 있겠지만 결국 나라 전체가 하향평준화로 가게 된다.

▲박홍석 =선진국의 민주주의는 수많은 투쟁의 역사였다. 최근 우리나라도
비리(非理)와 관련한 각종 게이트가 연일 터지고 있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좋은 현상이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비리가 드러나며
투명화·정화(淨化)돼 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정도의 고통 없이
우리가 선진 민주사회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과욕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게이트가 터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변대규 =앞으로는 개인의 시대가 온다. 수직적이고 집단적인 문화에서
탈피하여 수평적이고 합리적이며 개인이 존중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기술자 등 전문가들의 두뇌와 기업가의 창업 정신을 고무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모종린 =개인의 시대는 실력있는 사람을 인정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신입생에게 대학에 들어온 목적을 물어보면 사람을 사귀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사회의 연고의 위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예다. 학연은 물론 지연·혈연과 같은 좋은 연고 속에 들어가면
일생이 편안해진다. 실력으로 평가하는 사회가 돼야 연고를 끊을 수
있다.

▲김호기 =그러려면 먼저 기득권층부터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한다.
교수·기자·검사·국세청공무원이 식당에 밥 먹으러 가면 서로 돈을 안
내서 결국에는 식당주인이 돈을 냈다고 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만날 얻어 먹다가 내 돈 내고 먹으려면 당장에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고통을 겪겠지만, 결국에는 그게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고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발전하면서 파이가 커져 그 이득을 서로 나눌 수 있다. 일단
파이가 커져야 나눠 먹을 것도 많을 게 아닌가.

▲이혜훈 =버리고 갈 것, 가져갈 것, 새로 만들거나 되찾을 것을 찾아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이들 네 가지를 어떻게 잘 조화시키면서 이끌고
나가느냐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경제성장정책에서는 성장주의 대
복지주의라는 대립구도가 아니라 이를 조화시키면서 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지나친 성장주의가 문제를 일으켰듯이
지나친 복지주의도 불필요한 고통을 가져올 것이다. 또 우리는 교육열이
지나치다고 하는데 이를 잘 이용하면 지식 및 정보사회에 앞서 가는
실력있는 인재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

◆ 열띤 토론…사전 뒤져가며 갑론을박

"공짜는 없다가 너무 유치한 것 아닙니까?" "그런 감도 있지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다 않는 의식을 바꾸려면 직설적인 게
좋겠습니다."

'공짜는 없다'가 '2020 미래로 가자'는 미래지향적 프로젝트의
타이틀 롤을 맡기는 진부하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글사전까지 가져다 비어(卑語)나 속어(俗語)인가도 따졌다. 그 바람에
끝날 듯 하던 회의가 10여분이나 지연된 끝에 결국 '공짜는 없다'가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코리아 프로젝트 2020' 기획위원들의 토론장은 다양한 전공에다
다양한 경력의 소장학자들의 자유분망함이 터져 나온다. 위원 7명의
전공은 경제학, 경영학, 제어계측공학, 생명공학, 사회학의 다섯 가지고
직업은 교수, 기업대표, 컨설턴트, 연구원의 네 가지다. 위원들 스스로
이같은 다양한 구성원과 자리를 함께 하기는 처음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하지만 토론에 들어가면 전공, 직업, 직위는 안중에도 없다.

부족한 자원과 자본으로 성장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할 키워드는 선택과 집중.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일부 산업이나 기술에 집중투자하는 불균형(不均衡) 발전전략이 된다.
경영컨설턴트와 기업대표 입장에서는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연구원 또한 향후 연구방향 및 전략을 잡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그래도 한 목소리는 2020년 미래는 지금의
선택과 집중에 따라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위원들 모두 조심스러운 마음이었다. ( 최성환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