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하거든, 헛발질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다오." 대표 선수로 뽑혀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에게, 마을
어른들이 이런 식으로 인사를 건넨다면? 축구사학자들은 실력에 비해
월드컵 성적이 가장 좋지 않았던 팀으로 단연코 소련을 첫 손에 꼽는다.
58년 처음으로 본선 무대에 얼굴을 내민 이래, 소련은 70년 대회 때까지
4회 연속 8강에 진출한 막강한 팀이다. 오랜만에 복귀한 82년 대회 때도
8강. 86년에는 16강에서 물러섰고, 소련의 이름으로 출전한 마지막
대회가 된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예선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그들은 66년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4강 고지를 밟아보지
못했다. 이만하면 체면을 세웠다고 생각한 선수들이 준준결승부터
헛발질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족의식이었다. 구 소련의 열다섯
개 공화국에서 몰려든 선수들은 소련의 국기를 '나의 깃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작심하고 일부러 져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몸 속에 남아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에너지까지 쏟아 붓지 않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들은, 디나모 키예프 팀의
경기복을 입고 출전하는 소련 1부리그의 몇몇 경기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소련군(軍)이 후원자인 CSKA
모스크바나 KGB가 후원하는 다이나모 모스크바를 상대로 벌이는 국내
리그 경기가 그들에게는 진정한 국가대표팀 경기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벨로루시 출신들은 디나모 민스크를, 그루지야 출신들은
트블리시 팀을, 아르메니아 출신들은 예레반 아라라트를 '진정한
대표팀'으로 생각했다.
전제주의 정권 아래에서, 시민들이 국기나 당기가 아닌 깃발을 흔들며
누군가를 자유롭게 욕할 수 있는 공간은 축구장이 유일했다던가.
70년대와 80년대, 소련 팀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우크라이나
출신들이었다. 비통한 얼굴로 비행기 트랩을 내린 소련 월드컵 대표
선수들은, 고향 마을의 비공식적인 환영 행사장에서 비로소 표정을 풀곤
했다. '우크라이나의 영웅'들을 환대하는 이 잔치에서, '헛발질'은
아마도 가장 재미있는 화젯거리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 장원재 /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