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중국에서 한국 기업인들의 불의의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1월 5일 허난(河南)성 난양(南陽)에서 사무실 겸 숙소에서 잠자던 김모
사장이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숨진 데 이어, 2월 16일 톈진(天津)에서는
60대 경영자가 춘절(春節·설) 연휴기간 공장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로부터 열흘 뒤인 2월 26일엔 한국 기업이 많은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의 한 호텔에서 잠자던 한국 기업체 직원이 괴한들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사고경위는 각기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돈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어떤 기업인은 은행에서 거액의 돈을 인출한 것이 노출돼 범죄대상이
되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숙소에 금고를 놔둔 것이 화근이 되었다. 또
어떤 기업인은 유흥업소 여성과 접대비 문제로 다툰 뒤 폭력배들의
집단폭행을 당해 화를 입었다.

경위야 어떻든 이들이 한국에 있었거나 다른 국가에 주재했더라면
목숨까지 잃었겠느냐 하는 아쉬움과 함께, 왜 중국 땅에서 유독 한국인의
피해가 많은가 하는 의문이 인다.

중국에서 발생하는 한국인 대상 범죄의 원인은 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일방적인 잘못 때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중국의 환경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중국에는 미국·일본·유럽의 기업인들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인의 피해가 많은 것은 중국
사회의 혼란상과 한국의 여권·사증제도의 문제점, 그리고 한국인
개개인의 부주의가 겹쳐 일어난다고 판단된다.

최근 중국 사회는 치안에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개혁·개방 20년 사이에
1억5000만~2억에 달하는 농촌 유휴인력이 도시로 밀려들었고, 국유기업
개혁으로 일자리를 잃은 도시 실업자가 1억명에 달한다. 중국은 또
거주이전의 통제수단이었던 호구(戶口)제도를 완화중이다. 이에 따라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 톈진 등 대도시에는 거대한 도시 하층계급이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저임(低賃) 노동력이나
유흥·오락산업으로 흡수되지만 조직범죄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현행 한국 여권과 입국사증(비자) 제도의 허점도 흉악범죄의
유발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게 현지 한국인들의 지적이다. 지금은 여권의
사진이 인쇄방식으로 바뀌었지만, 이전에 발행된 여권은 사진부착
방식이어서 위조가 쉽다. 외모가 비슷한 중국인(혹은 조선족 동포)의
사진과 바꿔치기하면 불법 입국에 이용될 수 있다. 중국에서 한국인
여권은 2만위안(元·약 300만원) 안팎에 거래된다. 중국 범죄자들의 눈에
한국인은 '움직이는 돈'인 셈이다.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중국땅이지만 한국인의 안전의식은 그에
못미친다. 한국인의 음주문화는 중국에서 강력범죄를 유발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현금을 많이 휴대하거나 숙소에 귀중품을 두는 것도
위험한 행위이다. 주변 사람을 너무 믿는 것은 '화근'이 될 수 있다.
오죽하면 중국인들조차 아파트 입구에 2개의 철대문을 달고, 서너개의
자물쇠를 채워두겠는가.

개인적으로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국가가 담당해야 할 몫도 있다.
1999년 이래 중국에서 피살된 한국인은 18명에 달하지만 우리정부는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고 언제나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강한 나라에는 약하고 약한 나라에는 강한 속성을 종종 보인다. 수년 전
난징(南京)에서 독일 기업인 일가족이 피살됐을 때 중국은
국가지도자들이 나서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었다. 한국인이
죽으면 해당 시(市)의 시장조차도 꿈쩍하지 않는다. '한국인은 아무리
밟아도 반발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우리 정부가 중국측에 심어준 것은
아닐까.

( 지해범/국제부 차장대우 hbj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