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계기의 하나는 두 남녀의 첫 만남,
즉 "눈이 맞는" 순간이다. 첫 만남의 장면은 소설의 중요한 출발점인
동시에 사건전개의 동기와 열쇠로 작용한다. 그에 뒤이은 다른 만남,
이별, 추적, 기다림, 잠정적인 상실, 결정적인 이별 등 우여곡절의
연쇄는 그 첫 만남의 세레모니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고전적인 소설 속에서 첫 만남의 서술은 일정한 규범과 형식에 따르고
있다. 그것은 대개 정적인 「설정」과 동적인 「연출」라는 크게 두 가지
서술형태의 연속에 의존한다. 「설정」은 두 인물을 시공간적인 테두리
속에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말한다. 가장 유명한 연애소설 「춘향전」의
경우, 「시간」은 "숙종 대왕 즉위 초, 오월 단오 무렵 어느 날"이며,
「장소」는 "광한루". 이 시공간 속에 두 「인물」 이도령과 춘향은
각기 광한루와 그 곳에서 좀 떨어진 그네사이의 「포지션」에
자리잡는다. 이때 흔히 한쪽 편의 눈에 비친 상대편의 아름다운 인상착의
묘사가 뒤따르게 마련이지만 이도령은 처음 본 처녀의 그네 뛰는 모습을
보자 "심신이 황홀해진"나머지 "온몸을 벌벌 떨며" 정확한 관찰에
실패한 채 그저 "저 건너 솔숲에 선녀가 내려왔나 보다"고 감탄하며
질문만 연발한다. "금이냐, 옥이냐, 해당화냐, 귀신이냐, 도깨비냐,
구미호냐, 네 할미냐, 내 첩이냐?"
이렇게 만남의 장면이 「설정」되고 나면 마침내 역동적인 「연출」이
이어진다. 그중 가장 먼저요 으뜸가는 요소가 「효과」라는 것인데 이는
이미 설정의 순간과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첫눈에
반한다", "벼락맞은 듯", "심신이 황홀해진"...따위의 전기적
자기적 사랑의 충격은 바로 효과의 동시성, 전격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만남의 설정과 동시에 연출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이때 주인공은 흔히
관찰, 판단, 비판의 능력을 상실한 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도령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꽃 본 나비처럼 미친 마음 아무래도
죽겠다"고 비명을 내지르며 처녀에게 방자를 메신저로 파견한다. 이것이
바로 연출의 또 다른 요소인 「교환」, 즉 파트너 사이의 모든
소통행위다. 교환은 언어기호, 즉 말의 생산에 의존하는 직접적 경우와
시선, 몸짓, 무언의 표현, 태도 등의 간접적 신호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창백해지고 붉어지는 것, 웅변적 시선("그
눈길이 할 말을 다 하고 있었다"), 눈물, 현기증, 실어, 단순한 침묵,
기절 등 본의 아닌 의미를 생산하는 신체적 지표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여기서는 「설정」의 포지션이 중요해진다. 이도령은 춘향과의
공간적(광한루와 그네사이의 거리), 사회규범적(숙종시대 양반집 도령)
포지션 때문에 방자를 "파견"하여 언어적 의사교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상당한 협상과정을 거쳐 처녀가 "홍공단 두리주머니끈 끌러
열고서 붓과 먹을 꺼내 손에 들고 갈잎 뜯어 단숨에 적어준" 메시지는
다소간의 해석을 요한다. 이도령 받아보니 글자 넷이 쓰였구나. "기러기
안(雁), 나비 접(蝶), 게 해(蟹), 비둘기 구(鳩), 짝을 적었구나.
이리보고 저리 보되 글 뜻을 모르겠다." 이윽고 참을 수 없게된
이도령은 처녀 춘향의 집을 찾아간다. 여기가 바로 첫 만남 장면의
대단원인 "경계 넘기", 즉 둘 사이에 가로놓여있는 거리의 좁히기 및
제거의 단계다. 접근은 물리적, 상징적, 언어적인 접촉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방바닥에 떨어진 말채찍을 집으려다가 사를르의 가슴이
엠마의 등에 순간적으로 닿고 (「마담 보바리」) 펠릭스가 모르소프
부인의 드러난 등에 갑자기 키스를 퍼붓는 행위(「골짜기의 백합」) 등이
이 단계에 속한다. 그러나 많은 소설에서 「경계 넘기」는 오랫동안
불가능한 상태로 연기되어 있다가 말을 통한 의사교환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춘향은 벌써 "오동나무 거문고에 새줄 얹어 줄 골라 빗겨 안고" 님을
기다린다. 그녀는 님을 맞아 담배를 권하고 이도령은 현장에 임석한 제
삼자 춘향어미를 물리치기 위한 배알이 쇼를 벌인다. 단 둘이 남게되자
이도령은 "첩첩산중 늙은 범이 살진 암캐 물어다 놓고 흥에 겨워 노닐
듯"이 고운 손도 만져보고 머릿결도 스다듬으며 통성명한 다음 영원히
변치 않겠다는 언약의 수기(手記)를 써준다. 둘은 함께 합환주도 마신
다음 어르고 쓰다듬고 서로 업어주다가 옷 벗기고 잠을 잔다. 이윽고
닭이 울고 날이 새니...
그러나 날이 갈수록 첫 만남의 서술은 규범적 코드로부터의 일탈, 도치,
위반, 우회, 비켜가기를 통해 소설에 새로운 시대적 의미와 재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제 소설에서 황홀한 첫 만남의 장면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있어도 건조한 만남, 혹은 「풍금이 있던
자리」처럼 만남의 장면이 생략된 헤어짐의 소설이 있을 뿐이다. 이윽고
소설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두 남녀는 맛선 보는 날 처음 만나
여관으로 직행하면서 「춘향전」의 완벽한 희화를 보여주기에 이르렀다.
( 김화영·고려대 불문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