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톨스토이냐? 놀려도 빙긋 웃기만…" ## ## 길가다 화나면 냅다 깡통 걷어차던 친구 ## ## ‘별들의 고향’으로 일약 ‘文豪’로 뜰줄이야 ##
30년 전 쯤 소설가 최인호를 만났을 때 받은 인상은 복잡했다. 좋게 말하면 숫기 없거나 심하게 낯을 가렸고, 나쁘게 표현하면 신경질적인 위인이었다. 이름이 나기 전이라 “저 친구는 뭐가 못마땅해 저토록 짜증스런 표정으로 말할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체질적으로 떠벌이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매우 빠르고 짧게 한다. 주어와 동사만 구사하는 사람같다. 길고 넓은 세상 얘기를 써내면서도 자신은 몇 평 방구석을 벗어나지 못한다.
최인호와 나는 해방 직후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고,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연배다. 우리는 멋 깨나 낸다던 대학생 또래들이 아지트로 여겼던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이나 ‘디쉐네’ 같은 데서 처음 어울렸다. 먼저 알고 지내던 ‘그건 너’의 콧수염 가수 이장희를 통해 조우했는데, 최인호는 이장희의 서울고와 연세대 1년 선배였다.
게임방, PC방은 커녕 디스코텍도 아직 없던 시절이었다. 오락이 없는 우리는 그저 담배연기 자욱한 무교동 다방이나 음악감상실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게 전부였다. 최인호는 양 손을 바지주머니에 쿡 찌르고 길을 가다가 괜히 기분 나쁘면 찌그러진 깡통을 발길로 냅다 걷어차던, 만화나 영화 속의 ‘병태’라는 인물과 딱 닮았었다. 최인호는 나나 송창식, 윤형주, 서유석, 이장희, 김민기 같은 ‘순수 DDR(딴따라)’ 계열이 아니었지만, 늘 함께 어울렸다.
우리는 몰랐다. 우리가 그렇게 맥없이 만나고 맥없이 왔다갔다 하던 장소가 훗날 한국문화사에 그토록 큰 획을 긋는 ‘청바지문화’의 현장이 될 줄을 말이다. ‘청바지문화’는 그 당시 우리 사회가 과거와 전혀 다른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 상징이었다. 그리고 청바지, 통기타부대와 더불어 소설 ‘별들의 고향’으로 그런 세대혁명에 불을 붙인 게 바로 최인호였다.
‘별들의 고향’은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 보다 사회적 파장이 컸고, 90년대 초 서태지의 등장보다도 전면적이고 참신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언어와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솔직히 당시 우리는 ‘별들의 고향’이 그저 그런 통속소설인 줄 알았다. 우리같은 DDR과 어울려 서성이던 최인호가 장차 그토록 위대해질 소설을 쓰거나 자타가 공인하는 문호가 될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그러나 최인호는 예의 바지주머니에 양 손을 찌른 채 낄낄대며 길가의 깡통만 걷어찰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10년 전 쯤 됐을까. 그렇게 차돌보다 단단하고 짜증스러울 정도로 단호하던 최인호가 변했다. 갑자기 패기가 없고 멍청해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아는 최인호가 아니었다. 그는 신앙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괜히 배반당한 느낌이 들어서 쿡쿡 찔러봤다. “야! 나와라 나와. 때가 어느 땐데 톨스토이 흉내냐. 정녕 창작을 한다면 네가 신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 아니냐.” 가롯 유다 같은 나의 짖꿎은 꼬임에 그는 몇번 빙긋 웃는 게 전부였다.
그런 어느날 최인호는 내 방의 빈 캔버스에 검정 연필로 그림 한폭을 그려놓고 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풍경화였다. 나는 한번도 그에게 무슨 의미로 그런 그림을 그렸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최인호는 요즘 다시 무섭게 떴다. 소설 ‘상도’가 베스트셀러로 떠들썩 하더니 TV드라마로도 난리가 아니다. 30여년 전 왔다 간 줄 알았던 최인호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최인호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움추려든다. 친구랍시고 내뱉은 말들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젠 반대로 그가 내게 충고를 주는 것 같다. “영남아! 내가 그려준 풍경화를 잘 보렴.”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그 풍경화를 꺼내보며 친구의 온기를 느낀다.
( 조영남 / 가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