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국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면, 하나같이 1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위 「봉순이 언니」, 3위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순위마저 똑같습니다. 모두 「느낌표」라는 TV
프로에서 소개됐던 책들이지요. 방송매체의 가공할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케 합니다. 관(官)이나 민간단체에서 그토록 책을 읽자고 캠페인해도
꿈쩍 않던 독자들이 TV 오락프로에서 개그맨들이 책을 들고 나오자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조금은 씁쓸한 생각도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느낌표」는 평소 책에 관심있는 독자층보다는, 책을
읽지 않던 사람들을 대거 독서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데 공헌했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사가 책을 팔아 올린 수익금의 일부를 불우이웃 돕기에
쓰고, 또 그 일부를 독서진흥기금으로 적립키로 했다니, TV 프로 하나가
사회 분위기를 일신하는 큰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느낌표」의 성공은 책이라고 하는, 일견 딱딱하고 재미없는 소재에서
엄숙주의의 거품을 거둬내, 독자들이 보다 가볍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독서운동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만 남은 문제는 책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데 그치지 않고, 진정 책을 읽고 토론하고 사랑하는 문화로 성숙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시카고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독서 캠페인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1996년 시애틀에서 처음 시작된 이
운동은 로스앤젤레스, 시카고로 이어졌으며, 지금은 10여개 도시로
확대됐습니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하나의 책, 하나의
시카고」(One Book, One Chicago) 운동입니다. 시카고 시민들에게 한
권의 책(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을 읽히고 있는 이 운동은 시
당국과 시민, 기업의 유기적인 협조에 성공 포인트가 있습니다.
공공도서관에서는 주말마다 「앵무새 죽이기」영화를 상영하고,
변호사협회에서는 책 내용을 재현한 모의재판을 열고 있습니다.
시 당국은 교사 학부모를 위한 독서 가이드를 제작해 배포하고, 시내
스타벅스 커피숍에서는 독서토론에 참여하는 독자들에게 공짜커피와 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 각종 북클럽을 중심으로 열띤 독서토론이
벌어지고, 도서관마다 스터디그룹을 지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을
매개로 시카고 전체를 하나로 묶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조성될 독서진흥기금은, 구호만 외쳐온 기존 독서운동의 잘못을
반복하지 말고, 시카고처럼 입체적이고 실질적인 독서캠페인에 지원되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