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시인 ‘안동의 해학’

안동, 하면 으레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예향(禮鄕)이 떠오른다. 동시에
고답적이고 완고하다는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선지
안동에 우스개 따윈 없을 것이라 짐작하기 쉽다.

「안동의 해학」(현암사)의 저자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수백년
유교전통의 경직되고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도 촌철살인의 해학과 골계는
있었다고 말한다. 『고대광실 처마 밑에서 말뚝이 탈춤이 나왔 듯,
선비의 도포자락 속에도 걸쭉한 입담과 슬몃한 패설이 웅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안동에서 구전되는 90편의 우스개가 소개돼 있는데,
그 중에는 유독 제사와 가난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다.

유(柳)씨 성 가진 양반이 하인을 데리고 민가에 묵게 됐다. 마침 집
주인이 유씨에게 아버지 제사에 쓸 축지방과 독축을 부탁한다. 축지방을
써주고 깜박 잠이 든 유씨. 깨어났을 때는 제사가 끝난 뒤였다. 그런데
하인이 걱정말라며, 자신이 대신 축문을 읽었다 한다. 그래 어떻게
읽었느냐 물으니, 『김세차~』하는 것이 아닌가. 『김세차라니?』 『이
집 주인 성이 김가던데요?』 『예끼, 이놈아, 유세차면 유세차지
김세차가 어디 있노?』 『영감님은 유씨니까 유세차지만, 이 집은 김가니
김세차 안 맞니껴?』 이 유머에는 제례를 틀리게 하지 말라는 경 계와
함께, 지나친 형식주의에 대한 냉소와 조롱이 숨어있다.

유림의 고향 안동에서는 상민이나 머슴조차 한글을 섞어 한시를 짓는
재치와 익살을 부릴 줄 안다. 다음은, 돈으로 원님 벼슬을 산 양반을
풍자한 유머 한토막.

신임사또 환영잔치에서 아전이 무식한 사또를 놀릴 목적으로 시 한 수를
청한다. 난감해진 사또가 궁리끝에 「主屹山上에 能놀놀이요」라고 쓰니,
아전이 「大家門前에 大끙끙이라」고 받았다. 사또가 제딴에는 「주흘산
위에 곰(熊)이 놀놀하게 놀고 있구나』고 쓰니, 아전이 「큰 집 문앞에
개(犬)가 끙끙 짖고 있다」고 한 것이었다. 자기가 곰(熊)을 능(能)으로
잘못 쓴 것을 모르고 득의양양해진 사또가 개 견(犬)을 큰 대(大)로 잘못
쓴 아전을 힐책했다. 그러자 아전이 태연히 응답했다. 『사또가 능히
곰의 네 발을 자르는데, 소인이 어찌 개의 한 귀를 아끼리요.』

책에 실린 유머를 읽다보면, 명분과 이념을 앞세우면서도 순박하고
재치가 넘치는 안동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안동의 농담은 수수하고
약간은 템포가 느리고 점잖으며, 그래서 폭소보다는 너털웃음을 웃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김광억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고 한다.

하지만 이런 유머는 또 어떤가. 뱃사공이 앓아 눕자 과년한 딸이 대신
노를 잡았다. 어느날 배를 탄 불량배가 성희롱을 했다. 『처녀 배
타보기는 처음일세.』 『처녀 배가 잘도 흔들어 주는구나.』 처녀는
아무말 않고 있다가 불량배가 내리자 노를 밀며 말했다. 『환갑 전에
양간(인간)되긴 틀렸구나.』 『네가 웬 걱정이냐?』 『내 배에서
나갔으니까.』 사내는 처녀의 아들이 되고 만 것이다.

저자 김원길씨는 안동 지례마을 출신의 시인.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고향에서 문예창작마을 「지례예술촌」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한국적
전통 생활문화가 가장 잘 이어져 온 안동지방 유머를 통해 이 지방의
관습과 선비의식, 한국정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