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후죽순 창업… 세계기업 전쟁터 ##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스포츠 의류·용품업체인
드란스(Drance·람사)사. 광저우시 농구팀의 농구선수 출신과 의사 출신
부인이 함께 설립한 중국 토박이 회사다. 중국 내 내수규모 3위 정도의
위치를 자랑하는 이 회사 경영진들은 요즘 '중국의 월드컵 진출·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라는 스포츠 겹경사에도 그다지 기쁜 표정들이
아니다. 여의사 출신인 리춘지 부총경리는 "최근 1~2년 동안
줄기차게 퍼지고 있는 가짜업체들의 난립과 브랜드 도용, 이로
인한 가격경쟁이 한계를 벗어난 지 오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했으니 하루 빨리 국제수준에 걸맞는
선의의 경쟁풍토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면서 오히려 중국의 WTO 가입에
박수를 쳤다.
드란스는 89년 설립 이후 매년 100% 이상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지난
2000년 하반기 이후 광둥성에만 300여개의 유사업체들이 설립됐고,
지난해부터는 남의 브랜드를 그대로 베껴 절반값에 버젓이 시장에 내놓는
해적판 업체들마저 판치는 바람에 시장은 혼돈 속에 빠져 들었다.
"이익? 1년 6개월 전만 해도 매출액의 40% 정도였지만 지금은 10%
보기도 빠듯해요." 이 회사는 지난 1월 29일 임대료가 절반에 불과한
인근 빌딩으로 이삿짐을 쌌다.
광저우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30시간 거리인 둥관시
스룽전의 대만계 EMC사. 컴퓨터 모니터 등 전자 디스플레이 제품
전문업체로 93년 설립 이후 매년 80% 가량 성장하며 중국 투자의
성취감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경영진들은 이제는 과거가
그립다고 말한다.
"언제 도태될 지 장담 못해요. 오늘 '라오따(로대·큰형이라는
뜻)'였다가 내일은 '토끼'신세 되기가 쉬운 게 요즘 광둥성
전자업계의 현실입니다."(푸융창·부영강 수석경리)
EMC는 지난해 말 2000여명의 종업원 중 일부를 감원, 몸집 줄이기에
돌입했다. 푸 수석경리는 "제품의 질을 올리고, 원가를 줄이는 방법
이외에는 이 시장에서 버틸 수 없게 됐다"면서 "아마 중국 개혁 개방
이후 이런 경쟁은 처음 겪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EMC 공장에서 불과 5분거리에 있는 미놀타와 교세라. 두 업체는 한동안
'일본계'라는 동종혈통을 과시하며 고도성장을 함께 누려 왔지만
이제는 복사기·프린터라는 같은 시장을 놓고 서로 '죽자 살자'
피튀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현재 30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지만 모두들 양 업체간 싸움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두려워하고 있어요."
미놀타의 한 관리직원은 '회사가 언제 감원에 들어갈지 모르겠다'고
불안해 했다.
경제특구 주하이 타이촨전자 황즈빈 총경리는 30대
초반의 패기있는 젊은 경영자다. 하지만 요즘에는 피곤이 쌓였고,
팔팔하던 패기도 꽤나 꺾였다. 가끔씩 바다 건너편 마카오를 바라 보는
것도 요즘 습관 아닌 습관이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주력제품인 '비디오
도어폰(Video Door Phone)' 제조에 뛰어 든 업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 원가 맞추기가 급급해졌기 때문이다.
"2년 전 불과 100여개에 불과하던 업체 수가 400여개 이상으로
급증했어요.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몰라요."
타이촨전자는 13년 전 국영기업에서 5년전 자신이 지분을 100% 인수,
사영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한해 평균 70%의 고도성장에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러나 최근 1~2년 동안 업계는 '살벌한 전쟁터'로 바뀌었고,
회사의 앞날을 낙관하기 힘든 지경에 처했다. 경쟁자를 죽이려고(?)
요즘에는 7개월에 한 번씩 신제품을 내놓아 보지만 아직 경쟁자가
줄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KOTRA 이규남 광저우 무역관장은 "중국시장 내 상품가격은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리알 시장으로 바뀌었다"면서
"시장지배력이 없는 한 광둥성에서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수 있는
횡재의 여지는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광둥성 내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삼성SDI 선전공장도
지난해 수익이 예상치를 크게 밑돌 정도로 고전했고, 일본 유수의
철강업체들도 가격 카르텔이 깨지는 바람에 원가를 밑도는 출혈경쟁에
몸을 던지고 있는 게 광둥성의 현실이다.
반면 위성통신 안테나업체인 젠보통전신사는 여전히
가격경쟁력을 자신한다. 85년 시안대학 출신 무선통신 전문가들이
모여 중국 내 최초로 무선위성 안테나 기술을 개발, 여기에 저임금
숙련기능인력을 최대한 활용하며 유럽이나 미국제품을 앞도하고 있는 것.
"경쟁업체들이 나와도 아직까지 40% 이상 가격이 싼 편입니다.
고급인력들을 대거 확보하면 당분간 별 걱정없이 세계 시장을 누빌 수
있을 겁니다." (치우젠·구건 총경리)
'세계의 생산공장'이 된 중국. 그 중국 제1의 생산기지인 광둥성은 한
때 '중국 재벌기업들의 메카'로까지 불렸지만 이제는 중국
토박이업체들조차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쳐야 하는 거대전쟁터로 변모해
버렸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기술력·브랜드를 발판으로 한
정면돌파밖에 없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 광주·동완·주해=이광회특파원 santaf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