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의 일본 혼다(本田)자동차 공장에서 중국 근로자가 용접작업을 하고 있다.광저우 혼다는 일본 본사의 품질기준(HQS)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뛰고 있다.

## “낡은업종 NO… 최첨단 업체만 오라”##


광둥성은 중국 개혁개방의 전초기지다. 20년 전
덩샤오핑 당시 최고실권자가 경제개혁에 착수했을 때 자유경제가
발화한 곳이 광둥성이다. 10년 전 중국 개혁개방 정책이 보수파의
견제로 위기에 처했을 때 덩샤오핑은 광둥성으로 가 개혁개방
재점화를 외쳤다. 그런 광둥성은 21세기로 접어든 현재 선진국의
낙후산업 유치지역이 아니라 첨단산업지역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세계 어느지역보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 현장을 이광회
홍콩특파원이 리포트한다. ( 편집자 )

‘전점후창(앞에는 상점 뒤에는 공장).’

홍콩과 한국·대만 등에 버젓이 본점을 차려놓고 광둥성에는
지저분한 생산공장을 두는 '제3국 위탁가공업'을 빗댄 말이다. 실제
개혁·개방 이후 홍콩인들과 한국·대만 기업가들이 이 방식의
저가생산을 통해 꽤나 많은 돈을 벌었던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가들은 여전히 광둥성을 '봉제와 완구·신발 등 3D업종의
피난처'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흘러간 옛말이 됐다. 광둥성은 경공업 제품 기지에서
첨단기술을 요구하는 고부가가치 제품 기지로 급격히 탈바꿈하고 있다.
주력 업종도 정보통신·자동차·금융·유통·서비스업이 가세한
'선진국형 산업구조'로 착착 바뀌는 중이다.

한국계 중소 화장품회사인 B사. 지난해 하반기 중국 투자를 위해
광저우·둥관·순더 등 광둥성 내 주요 시정부와 접촉을 시도했다가
낭패를 봤다. 김모 사장은 수년 전 중국 관리들이
한국까지 찾아와 "제발 투자 좀 해달라"고 애걸복걸하던 기억을
되새기며 상담을 요청했다. 내심 '대접 좀 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지만 반응은 영 딴판. 담당 공무원들은 만나기조차 어려웠고,
되돌아온 답도 "첨단기업 아니면 영업허가증 내주기가 불가능하다"는
짤막한 회신뿐이었다. 불과 2~3년 만에 광둥성 투자담당 공무원들의
분위기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김 사장은 결국 광둥성 안에서도 가장
인기 없고, 경제성장도 뒤늦은 G시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 기업뿐 아니다. 일본계 '교세라'는 지난해 초 둥관시 당국에
복사기 공장 증설 허가를 요청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복사기는
중국기업들도 만드는 평범한 제품"이라는 게 시측의 설명. 교세라는
"새 복사기는 일반제품이 아닌 디지털 복사기이며 일본에서도
첨단"이라고 설득, 두 달 만에 겨우 착공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광둥성에는 전세계 500대 기업 중 280여개가 이미 진출해 있다. 다국적
기업의 대중국 전진기지로 지금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지난해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다국적기업들의 대 광둥성 투자 발걸음은
또 다시 템포가 빨라지고 있다. 영국 BT(영국석유)가 지난 연말 재빨리
광둥성에 미화 10억달러 투자계획을 밝혔고, 홍콩 저스코(Jusco)백화점이
5년 안에 700억원을 투자키로 했다. 이에 질세라 세븐일레븐 체인도
광둥성 투자계획을 공식화했다.


광저우에 진출한 일본 혼다(Honda)자동차도 고유 브랜드 '혼다
어코드'에 이어 소형 승용차 라인을 추가하는 등 투자액을 늘릴
예정이다. 혼다의 성공을 확인한 수많은 일본계 중소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서서히 광저우 주변으로 모여 광둥성이 자동차산업의
핵심거점으로 변신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광둥성 소비자들의 두터운
구매력에다가, 저렴한 인건비가 다국적 기업들을 또 다시 부르는 이유일
것"이라는 게 KOTRA 이규남 관장의 분석이다.

광둥성 내 주력기업군도 첨단 대기업체들로 거의 대체됐다. 지난해
12월 26∼27일 양일간 홍콩 완차이 컨벤션센터에서는 중국기업들의
이색적인 취업설명회가 열렸다. 사상 최초로 중국의 75개 대기업, 100여
기관들이 홍콩에서 해외 인재 스카우트에 나섰는데 스카우트 인원은 대략
700여명 정도. 그러나 당일 설명회장 문이 열리자마자 홍콩인들과
대만인·미국인, 심지어 한국인들까지 무려 700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 참여기업들 중 85%가
'미디어(MIDEA)에어컨·TCL·광저우증권…' 등 광둥성 내 최첨단
대기업 일색이었다. 연봉도 최대 3억2000만원(200만위안)이라는 파격적인
액수를 제시, 참석자들을 애타게 만들었다.

광둥성 성도인 광저우시는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 베이징
중관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톈허구 6.7㎢(202만평)에
대규모 소프트웨어 연구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시측은
2003년쯤부터 본격 조성하게 되면 미국 실리콘밸리의 중국인 박사들을
대거 유치, 중국 최대 소프트웨어단지로 육성하겠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선진국형 산업인 유통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다. 광저우시
하이저우구는 신흥 부자동네로 유명한 곳인데, 올 들어 유통시장
쟁탈전이 살벌하게 벌어지고 있다. 약 100m 간격을 두고
대형전자유통업체들이 7개나 밀집한 나머지 서로 판매가격을 망원경으로
감시할 정도라는 것.

"둥쩌전자센터 옆에 순뎬센터, 하오요둬매장 옆에
화하이와 헝펑매장 등이 위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어요. 여기에 완자·까르푸·송샤의 대형전자매장
등이 다닥다닥 붙어 한치의 추월도 허용치 않겠다는 각오들입니다."

LG전자 광저우법인 주차이군 경리의 말이다.

광둥성은 WTO가입을 계기로 '단순 생산기지'에서 첨단을 지향하는
'선진국형 산업기지'로 변신하고 있다. 반도체와 통신산업으로 먼저
내달려간 한국을 광둥성은 또 다시 무서우리만치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 광주·동완=이광회특파원 santaf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