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성'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던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빨간 경고등'이 커졌다.
지난 12월초 파산보호 신청을 한 미국 7위의 에너지 중개 업체인
엔론그룹이 회계 장부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진 이후 글로벌 크로싱,
타이코 등 다른 기업들에서도 유사한 의혹이 연달아 제기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시장에서 발길을 돌리면서 뉴욕
증시는 나흘 연속 하강 곡선을 그렸다.
모건스탠리증권에서 펀드매니저로 활약하고 있는 최영애 부사장은 "지난
10년간의 호황으로 월스트리트가 헤이해진 것같다. 챙피해서
월스트리트를 떠나고 싶은 기분이다"고 말했다.
◆ 드러나는 다양한 사례들
재벌그룹인 타이코는 지난 3년 동안 700개 이상의 기업 인수를 위해
80억달러를 투자한 사실을 외부에 전혀 알리지 않다가 최근 갑자기
이같은 사실을 공개, 투자자들로부터 의혹을 사고 있다. 펜실베니아
주립대(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의 에드워드 케츠(Ketz) 회계학
교수는 "타이코가 회계 원칙을 위배하지는 않았지만, 공개되지 않은
인수거래 규모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1월28일 법정관리를 신청한 통신업체인 글로벌 크로싱도 현재 미국
증권감독원에서 회계기준 위반 여부 조사를 받고 있다. 글로벌 크로싱의
경영진들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오래전 자사 주식을 대거 처분한 사실로
구설수에 올라 있다. 회계장부에 대한 불신은 GE 등 대표적
우량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 외에 미국계 증권사인 리먼 브러더스에서는 최근 객장직원이 수년동안
허위로 조작된 계좌 정보를 고객에게 보내면서 고객 돈을 빼돌렸다가
뒤늦게 들통난 사기사건까지 발생했다.
◆ 비난받는 대형 상업은행들
은행과 증권, 보험업을 겸업하고 있는 시티그룹이나 JP 모건 체이스 등
지주회사 형태의 대형 상업은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들은 증권 발행
및 인수 합병 등 수수료 수입이 짭짤한 거래를 따내기 위해 대출금리
인하 등 손해보는 대출까지 불사, 무분별한 차입 경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엔론과의 금융거래에서 이같은 문제점들이 그대로
노출됐다.
이에 따라 1999년11월 상업은행의 증권업 겸업을 금지해왔던
글래스-스티걸 법 폐지 이후 상업은행으로서와 투자은행으로서의
이해가 상충(conflict of interests)하는 문제가 새삼 이슈가 되고
있다. 메릴린치 증권의 제임스 위긴스(Wiggins) 대변인은 "이쪽
비즈니스는 항상 이해 상충의 소지가 있다"면서 "회사가 이것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 무리가 낳는 비리
전문가들은 월스트리트의 산업 분석가들이 내놓는 기업 실적 전망치를
실제로 기업들이 맞추지 못하면 주식가격이 곤두박질치는 뉴욕 증시의
생리를 첫번째 원인으로 꼽았다. 트라이스타 투자자문의 데이비드 사장은
"CEO들의 보너스와 자사 주식을 보유한 직원들의 재산이 그 기업의 주식
가격과 직접 연계되어 있어, CEO들이 목숨을 걸고 실적 전망치를
맞추려다 보니까 이해 상충과 부도덕의 회색지대를 넘나드는 것같다"고
분석했다.
웰스파고 은행 손성원 부행장은 "불경기 때는 순이익 증가율이
둔화되는데도 과거 호황기의 순이익을 올리려고 하니까 회계 장부를
맛사지하면서 무리를 하는 것같다"고 지적했다.
( 뉴욕=김재호특파원 jaeho@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