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 큰 대로변에서 내려 비포장 오솔길을
따라 400~500m 걸어들어가자, 한 마을이 나왔다. 북한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차가운 가운데, 한 시골 집 옆 낡은 건물에 들어서자
커다란 캔버스와 물감, 붓 등이 눈에 들어왔다.
"실내인데도도 춥죠? 우사를 개조해 만든 작업실이거든요. 아무리
창문을 닫아도 찬바람이 들어와요."
작은 전기난로 2개로 20평 작업실 전체를 데우는 게 민망한 듯,
최진희(여·31)씨는 다소 겸연쩍어 했다. 더 안쪽 창가엔 새
작품 구상에 지친 듯, 김인숙(여·41)씨가 창문 너머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품 생각만 할 수 있으니까 좋아요. 도시 속에 작업실이 있으면,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이 많거든요.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최씨는 의정부시에 있는 집에서 다니는 불편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시골인심만큼이나 넉넉한 작업실에 만족해 했다. 최씨와 김씨가 이곳에서
생활한 것은 작년 1월. 포천 대진대 서양화과 97학번 동창인 이들이
대학졸업과 함께, 본격 작품활동을 마련한 곳이다.
"저나 인숙이 언니나 늦게 대학을 마쳤지요. 각각 서른 일곱, 스물
일곱에 대학에 들어간 셈이니."
'늦깎이' 대학생이라는 것 외에 이들에겐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대진대에 입학 전, 둘 다 2년제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었다는 것.
최씨는 "어렸을 때 화가가 꿈이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했어요.
'굶어죽기 딱 맞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그래서 처음엔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이후 94년 대학 졸업과 함께 기획사에 취직한 최씨는 의상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나 자신의 창작욕구와는 무관하게 주문자 기호에 무조건
맞춰야했던 일에 염증을 느끼게 됐고, 결국 1년 반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냥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따로 있는데,
하루하루 시간만 가고."
그후 1년간의 방황 끝에 새로 진학을 준비하게 되고, 98년 대진대에
편입하게 된다.
김씨의 경우도 마찬가지. 85년 대구에서 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미술학원강사로 일하다가 공부 욕심이 발동, 무작정 서울에 온 뒤 다시
대학에 진학한 케이스다. 학원강사로 일하던 중 취미로 그린 자신의
그림에 더이상 발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한다.
이들의 무모함(?)과 오기가 발동한 탓일까. 대학 재학중 이들은
대한민국 회화대전, 경기도 미술대전 등에서 특선과 우수상 등을
수상했다. 최씨는 "명문대 출신 유명화가들에 비해 아직 부족한 게
많다"며 "그러나 우사도 마다하지 않는 억척스러움이 우리들의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