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검찰총장이 전격 취임한 뒤 곧 뒤따를 것 같던
검찰인사가 지지부진을 면치 못했다. 특검의 이용호게이트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문책성인사가 시기상조라는 추측이 있던
터였다. 하지만 '1·29'개각 때 최경원 전 법무장관이 돌연
경질되면서 검찰인사 지연이 바로 청와대파견 민정수석의 검찰복귀와
맞물려있다는 사실이 어슴푸레 드러났다.
검사의 청와대파견 근무가 청와대의 검찰장악 핵심고리이고, 이를 통해
검찰이 정치적 외풍에 휘말리게 된다는 점은 이미 진부한 상식에 속한다.
국민의 정부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1997년 1월 당시
야당당수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주장해 만든 검찰청법 제42조 제2항,
'검사는 대통령 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 비서실의 직위를 겸임할 수
없다'는 규정이 이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들어와서도 검사들이 법무연수원직원으로 신분을 바꾼 뒤 청와대에 파견
근무하는 편법을 통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립하기 위한 개정입법의
취지를 무색케 했다. 그 결과 검찰의 위기와 청와대의 위기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현상을 낳게 된 것이다.
재발하고 있는 기현상을 막으려면 검사의 청와대파견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특히 1·29개각 이후 검찰의 인사지연과 함께 증폭되어
왔다. 드디어 김대중 대통령은 곧 있을 검찰인사를 앞두고 검사들의
청와대파견제도를 사실상 폐지토록 했다는 것이다. 후임자들은
민간법률전문가들로 충원하여 대통령에 대한 법률보좌기능을 맡기겠다고
한다. 이로써 검찰의 중립성이 강화되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왜냐하면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김 대통령과 검찰총수의 의지가 지금은 매우 불투명해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같은 조치가 이명재 검찰총장 취임 직후, 그것도 이 총장의
복귀명령을 통해 이루어졌더라면 국민들은 구각을 깨고자하는 검찰의
새로운 몸부림으로 알고 쌍수로써 환영했을 것이다. 국민의 신뢰는 이
같은 모양새를 통해 싹튼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김
대통령의 이 같은 결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고사하고 불신만 커져가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지금 특검에 의해 진실규명작업이 가속화하면서 위기에 빠진 것은
검찰뿐만 아니라 청와대이다. 만약 청와대가 이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할
자신감과 의지만 있다면 검찰인사에 특정지역출신 안배니 청와대파견
검사들의 복귀문제가 걸림돌이 되어야 할 까닭이 없다. 법과 원칙대로
하면 제대로 굴러갈 검찰조직에 부자연스러운 정치적 연결고리를
만들어두느라 안간힘을 쓰다보니 검찰조직만 질식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 지적하듯 파견제 폐지가 민정수석을
검찰로 보내기 위한 명분쌓기용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어쨌거나 오래된 편법과 관행의 꼬리를 끊고 검사들을 친정으로
돌려보내기로 한 것은 검찰 바로서기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문제는
정치권력과 검찰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다. 오늘의 검찰위기는 대부분
부패한 정치권력에서 비롯되었다. 썩은 권력을 돌보다보니 정의의 칼날은
무디어져서 시민의 질서의식마저 썩게 만들었다. 마치 부실기업의 부채를
떠안고 휘청거리던 IMF시대 제도금융권의 모습이 오늘 우리나라 검찰이
당면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해 보인다.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산다'는 것이 진정 김 대통령의
통치철학이라면 먼저 검찰권을 검찰의 손에 온전히 넘겨주어야 한다.
검찰인사와 친인척비리수사 모든 것을 검찰의 손에 확실히 맡겨야 한다.
그래야만 검사 청와대파견제도 폐지의 진의가 살아날 것이다. 검찰을
질식상태에서 식물인간상태로 끌고 갈 것인지 또는 원기회복상태로 이끌
것인지는 김 대통령의 의지에 달렸다.
( 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