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틈새 시장을 파고 들어라.”
2002한·일월드컵을 앞둔 기업들에 지상명령이 떨어졌다. 올해 월드컵은
430억명이 시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구촌 최대의 축제. 기업 입장에선
마케팅의 '황금어장'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추산하는 월드컵의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3조7000억여원에 달하니 기업들이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난제가 있다. FIFA(국제축구연맹) 공식 후원사가 아닌 업체는
원칙적으로 월드컵 로고나 휘장, 월드컵 축구라는 말 자체를 쓸 수가
없다. 월드컵 축구와 관련한 모든 권리는 FIFA가 독점하고 있으며 거액을
지급한 15개 FIFA파트너 등 '공식 후원사'만이 이를 나눠가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어떻게든 월드컵을 이용하려는 기업들과 불법 색출에 혈안이
된 FIFA 사이엔 치열한 숨바꼭질이 벌어진다.
나이키는 세계적으로 아디다스를 능가하는 스포츠 기업. 하지만
축구에서만큼은 터줏대감이자 FIFA파트너인 아디다스에 열세를 면치
못한다. 나이키는 월드컵 개막일(5월 31일) 직전에 서울에 대규모 어린이
축구 놀이공원시설인 '나이키 파크'를 오픈, 역전을 노리는 바람몰이에
돌입한다는 계획. "나이키 파크를 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월드컵을 보지
못한 것"이라는 비장한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시내 후보지 3곳을
대상으로 장소를 물색 중이다.
나이키는 지난 98프랑스월드컵 때도 파리에 700㎡에 달하는 나이키
파크를 조성해 재미를 봤다. "서울 나이키 파크는 프랑스를 능가하는
규모의 초현대적 전시관과 놀이시설로 가득찰 것"이라는 호언이다.
FIFA로서는 나이키측이 월드컵 엠블렘이나 로고는 물론, 지적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는 부분을 교묘하게 피해갈 경우 속수무책이다.
스포츠 업체뿐 아니다. 국내 기업들도 치열한 '앰부시 마케팅(ambush
marketing·위장 마케팅)'에 돌입해 있다. LG전자는 지난 20일 일본
오사카에서 'LG컵 풋살(5인제 실내축구) 페스타 2002' 개막식을 열고
오는 4월 7일까지 78일간 일본 전역에서 대규모 풋살 대회를 개최한다.
역시 월드컵을 이용한 마케팅이지만 이를 제재할 마땅한 방법은 없다.
FIFA의 지적 재산권을 전혀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앰부시 마케팅의 또 다른 사례로 꼽히는 것이 동아제약의
박카스 광고. 동아제약은 붉은 옷을 입은 젊은이들의 함성을 배경으로
"한국이 프랑스를 꺾고…"하는 독특한 광고 카피를 만들어 짭짤한
'월드컵 효과'를 봤다. 그러나 광고 어디에도 월드컵이나 축구란 말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FIFA로부터 항의도 없었다. "(FIFA로부터)
걸리지 않을 만큼만 만들었다"는 것이 이 광고 제작 담당자인 MBC애드컴
박일경 팀장의 말이다. 광고에 등장하는 대표팀 유니폼의
의장등록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남대문에서 대량 구입한 유니폼 어깨
부분에 원 유니폼에는 없는 황색 실선을 일일이 손으로 붙여넣고
매직펜으로 상의 지퍼 흰 부분을 모두 파랗게 칠하는 작업을 했다.
광고제작 전에 법률자문을 거친 것은 물론이다.
SK텔레콤측은 통신업계 최대 라이벌인 KTF(KT프리텔)가 모기업 KT의
FIFA파트너 선정을 계기로 월드컵 마케팅에 적극 뛰어들면서 가장 긴장한
기업. SK텔레콤측은 응원단 '붉은악마'를 전면에 내세워 반격을 노리고
있다. 붉은악마의 행사를 적극 지원하는 대신 그 이미지를 반독점적으로
광고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SK는 최근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월드컵하면
떠오르는 기업은?'이라는 자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상위 5위 안에
들었다는 결과를 얻어내 고무돼 있다.
범법과 합법의 틈새에서 절묘한 외줄타기가 한창이지만 아직도 순진한
기업·단체들도 많다. 월드컵조직위의 최수영 지적재산권
담당관은 "초보적인 지적 재산권 개념도 없이 월드컵을 이용한 행사를
개최하겠다고 문의하는 기업이나 단체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면서
"FIFA의 월드컵 마케팅은 전 세계적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잘못
침해할 경우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