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1년도 채 안 남았다. 대통령을 꿈꾸는 인사들이 속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IMF 경제위기를 경험한 국민들은, 정치뿐만이
아니라 경제까지 능통한 경제대통령이 나와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면 불행하게도 경제분야 최고전문가가 우리나라
대통령으로 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 정치경험이 전무하지만 경제분야
100점짜리인 경제의 최고 전문가가 후보로 나왔다고 치자. 아마 그런
후보보다는 정치분야가 100점이고 경제분야 50점인 후보이거나, 경제와
정치분야 모두 골고루 70~80점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뽑힐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정치대통령과 분리하여 경제대통령을 따로 뽑으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정치대통령으로 정치분야 100점짜리 인물을
뽑고, 경제대통령으로 경제분야 100점짜리 인물을 따로 뽑으면 정치와
경제 모두 좋아질 것이다.

그러면 정치대통령과 경제대통령을 분리해서 뽑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미국식으로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와 경제전문가를 러닝메이트로 묶어
선출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대권후보들이 적당히 자리를 나눠먹는 식으로 흐를 소지가 많다.

다른 방법은 중앙은행 총재에게 경제정책에서 막중한 권한을 부여해
사실상 '경제대통령'의 임무를 맡기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금융위기 관리자의 역할까지 부여할 수 있다.
더불어, 중앙은행 총재가 행정부 눈치를 살피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총재의 임기와 인사권·예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 미국의 그린스펀
FRB(중앙은행) 의장이 경제대통령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예다.
필자는 이 방법이 능력있는 경제대통령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제대통령의 막중한 역할이 부여되는 만큼, 중앙은행 총재의
선발은 보다 엄격하고 신중히 해야 된다. 비경제 전문가인
대통령이나 그 측근들에 의해 자의적으로 임명되어서는 안 된다. 총재
후보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보다 객관적·전문적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예를 들면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소장학자들 중심으로 전문가들을
선발해 총재 추천위원회 같은 기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중립적
위원회가 최적임자로 추천한 인물을 대통령이 임명하면 인사의 공정성
시비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무엇보다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대통령다운 식견과 자질이
필요하다. 첫째, 시장경제 운용의 근본원리 및 경제정책에 대한
혜안을 갖춤으로써 경제학자들과 경제전문가들로부터 신망을 받는
인물이어야 한다. 둘째, 한국은행 총재는 구조조정과 개혁을 이끌 수
있는 비전과 추진력을 가진 개혁적 인사여야 한다. 셋째, 자리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뚜렷한 비전도 없이 전화만 오면
즉석에서 승낙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인사들에게 경제대통령의 중책을
맡길 수는 없다. 비전 없고 검증 안 된 인사들을 기용할 경우
경제원리에서 벗어난 땜질식 단기처방과 자리를 연명하기 위한 장밋빛
공약, 과장된 정책홍보들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제 3월이면 우리는 새로운 한국은행 총재를 뽑아야 한다. 국민들로서는
처음으로 경제분야 100점짜리 경제대통령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대통령 후보들도 한은 총재의 임기보장을 선언함으로써
'경제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특히 현직대통령이
직접 경제대통령 만들기에 나서서 최고의 인물을 한은 총재로
'삼고초려'해서 모셔 온다면 국민들에게 크나큰 선물이 될 것이다.

( 김세직/ IMF 이코노미스트·KIEP(대외경제정책연구원) 초청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