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BS의 '잘 먹고 잘 사는 법'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쇼크
먹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안하고 있는 식생활을 샅샅이 파헤칠 수
있을까? "내 인생의 지난 식생활을 후회합니다…." 고기 위주 식생활로
몸을 망친 외국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말할 때 저건 훗날 내 모습이구나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날 밤 TV를 같이 봤던 영화
스탭들의 다음날 식사 모습. 분명 곰탕이나 갈비탕 종류를 시킬 친구들이
하나같이 야채비빔밥을 시키는 것 아닌가. 엇, 이렇게 단박에 영향을
받을 수가.
다큐멘터리 한편이 불러일으킨 이 변화를 보니 퍼뜩 일본 TV와 한국 TV가
비교되었다. 우리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는 정말 구박받는 장르다.
만드는 덴 오락프로의 몇 배나 돈이 들어가고도 시청률은 안 오르니 잘
안 만든다. 구색을 갖추어야 되니까 무슨무슨 날 특집 때 외엔 기껏
정성들여 만들어 놓고도 시청자들 안보는 시간에 편성해 버린다.
헌데 일본의 경우는? 한 5년 전에 SBS PD 30여분들에게 어떤 방송을 하면
좋을까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흥분하며 맨 처음 한 이야기는
이랬다. "일본 TV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먹는 생선인 꽁치, 고등어,
정어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는데 그 주에 종합 시청률 1위를
했어요. 이 생선들의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고 잘 먹는 법은 어떤
것인가를 다뤘죠.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특집이 아니고 1주일에 한번
황금시간대에 방송합니다." 우리 PD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내가 오히려 방송 상식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
됐다.
그런 일이 있었던게 불과 5년 전인데, 지금 SBS에서 만든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 기분은 남다르다. 난 우리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이런 류의 생활 다큐멘터리를 1주일 단위로 황금 시간에 편성하면
종합시청률 1위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에 일본은 다큐멘터리가
완벽하게 장르별로 포진되었고 대중적 사랑도 받았다. 'TV도쿄'같은
곳은 장인들을 다루는 'TV 챔피온'이란 한 시간 반짜리 다큐멘터리를
주간 방송으로 십 수년간 줄기차게 해오며 재미를 보고 있다. 이번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계기로 2002년엔 다큐멘터리가 우리 방송에서 황금
포진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이규형 /영화감독 )